많은 사도들이 서신서를 보낼 때에 항상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이 은혜와 평강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도 자주 설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은혜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주심입니다. 사람이 스스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자기가 결정해서 온 것이 아닌 이상 자신이 사는 목적이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대적인 일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알게 하셨기에 그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평강은 말 그대로 평안인데, 모든 사물의 평안한 상태는 자기 존재의 목적대로 있는 것, 그것입니다. 식칼은 주방에 있을 때 가장 평안한 것이고, 총은 전쟁터에 있을 때 가장 평안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에게 있어 가장 평안한 상태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목적대로 있는 것, 그것이 사람에게 가장 평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든 목적대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크고 온전한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의 삶의 순간들, 사람들이 흔히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운명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만들기 전에 정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그 하나님의 뜻은 미리 정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하신 뜻을 표현하시니 사람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그 존재의 이유와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이고, 그 예정하심에 순종한 사람은 그 부르심에 순종한 것이며, 그 순종 안에 있으면 그것이 은혜이고 평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와 평강은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존재 목적, 삶의 의미,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평강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 인간의 정체성 = 우리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은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은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사업이 남들보다 잘 되고, 교회에 다녔더니 아이들이 성공하는 것이라 여기며,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다녔더니 큰 사고를 면했다는 것과 같은 것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평안은 말할 것도 없이 육신의 평안과 육신이 하는 일들이 아무런 갈등 없이 자기 뜻대로 평안히 잘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베드로사도는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있어야 평안하고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사도는 다른 서신서와는 조금 다르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 것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이미 은혜와 평강이 있는 이들에게 이 서신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베드로전서가 믿음 안에서 힘든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문안하고 위로하는 말이 많은 것과 연관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믿음의 시련은 은혜와 평강이 있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일반으로 생각하는 시련의 본질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유전으로부터 받은 자기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서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자기 삶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만나는 여러가지 문제를 시련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것을 시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자기가 걸려 넘어질 돌뿌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 가운에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가 삶을 주관하니 겪게 되는 갈등인데 그것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뜻을 자기 존재의 목적으로 살면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회의 법이나 기준으로 볼 때 바보 같고 미련해 보이는 것과, 세상의 가치관이 왕이 되어 서로 살아가는 법 안에서 그 법과 다른 의로 살아가니 늘 죄인이 되는 그 삶이 바로 믿음의 시련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가난한지와 같은 것이 믿음의 시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사도의 서신은 그런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어져서 나오는 베드로사도의 권면의 말씀, 믿음과 덕과 지식과 같은 것도 세상의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믿어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으로 아는 이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경을 지키는 것은 덕을 더하고 지식을 더하려고 하는 모든 것은 그 목적이 자신이 바라는 바 세상에서 성공하는 은혜와 평강일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과 다르게 성경을 지키는 것이 바로 행위에 기반을 둔 신앙이고, 그것이 선지자 노릇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사도의 서신은 온전한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누어진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인생을 향한 미리 정하신 뜻에 순종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은혜와 평강을 온전히 아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베드로전(후)서를 읽고자 한다면 이 베드로사도의 인사말씀이 자신의 마음인지, 자신의 신앙 고백인지부터 먼저 돌아보면 좋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