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3-12) 하나님의 뜻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Date : 2018. 1. 19. 13:41 Writer : 김홍덕

앞서 하나님의 뜻은 육신의 일이나 세상의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뜻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을 알면 삶의 모든 일을 볼 때 왜 그런 일이 있는지, 또 어느 때인지, 지금 벌어지고 닥친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과 그 세상을 온전함으로 다스린다고 믿는다면 속에 하나님의 심령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의 일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오직 인생으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 하나인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뜻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다가 사람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이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보내심을 받은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이 예수님의 오심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1:12)


많은 기독교인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하심을 인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싫었지만 인류의 죄를 구하기 위하여 마음을 굳게 먹고 참고 참으며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큰 신념과 각오로 자신을 희생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은 예수님의 희생을 이렇게 생각해보지 못했겠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각오와 신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든 믿음과 신앙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마음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그렇게 신념과 각오로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런 존재로 보니까 자신들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육신의 의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예수를 그렇게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는가? 굳은 의지로 지신 것이 아니라면 어떤 마음이었는가? 라는 의문이 남게 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바로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언제 어떤 고난을 받을 것인지를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간단하게 본능이라고 합니다. 생명만이 가진 본능.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의와 뜻이 그 생명의 본성이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바로 그 생명의 본성에 이끌림을 받아 사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십일 금식을 마치시고 시험을 받으실 때에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생명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니 그 생명은 성령과 하나님의 의와 뜻이 하나인 온전한 삼위일체로서 그 하나님의 본성에 이끌림을 받아 사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법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법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로 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별로 관심을 두시지 않는 먹고 사는 것과 세상일에 관한 것을 알고자 하는 생명이 전혀 없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인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도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의와 뜻도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즉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에 알고 한다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의 본성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생명의 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법으로 사는 모양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보고서 생명도 없으면서 그것을 지키려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구원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뭔가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말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을 때에 예수님이 구주라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로 인하여 돌아가셨다고 고백하는 것은 행위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마음을 다 잡는 것, 교회 가기 싫은데 마음을 다 잡고 가는 것과 같은 것은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도 결국 생명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 죽어서 천국을 가겠다는 목적이나, 예수 믿어 세상에서 성공하겠다는 목적을 위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것이라서 하는 것이기에 그것도 다 육신의 신념으로 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바로 본질적으로 행위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마음도 예수님께서 각오로 신념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신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셨기에 하신 것인데 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뜻과 말씀이 예수님의 생명이기에 그 생명의 본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어서, 하지 않으려 해도 하나님의 의와 뜻이 그것이고, 그 생명이 육신으로 그렇게 이끌기에 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노라 한다면 예수님과 같은 생명의 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기 안에 있어서 그 뜻이 육신의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고 예수를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생명의 법을 가지면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본성이 예수님과 같아서 그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게 되니 그러니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믿음만 있으면 도둑질해도 되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속이 뒤집어집니다. 예수님이나 하나님은 환장할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의 본성이 도적질을 하는 본성이 있다는 말이라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미칠 지경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말과 혀로 고백하는 것은 행위라고 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말로 하는 것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명의 본성에 관한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그것은 경건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지 못함을 인함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갈림길에서, 또 선택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의 본성이 하나님의 의와 뜻인지 아닌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내 육신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요 머리가 되는 삶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믿음이고, 그 믿음만이 구원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이 십자가면 예수님의 생명의 본성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섬기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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