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실 때에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언뜻 생각하기에 이 블로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말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마서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충되는 것 같은 말씀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사실 이 상충됨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아주 핵심적인 의문 중의 하나입니다.(이마저도 의문스럽지 않는 사람은 사실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로마서와 야고보서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과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


그러나 이것은 절대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행함이라는 것의 주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행함이라는 것은 스스로 동력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영어 동사의 구분으로 본다면 자동사?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함은 생명이 있는 것이 먼저고, 그 생명이 움직이는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행함이든지 그것은 그 행함을 자아내는 생명과 생명의 본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대전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위로 판단하신다는 말씀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판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어떤 생명이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거나 부정하게 된다는 말씀이며,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말씀은 행동을 자아내는 생명이 없으니 죽은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신 것 또한 이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라고 하시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관장하신다는 의미라기보다, 무엇을 생명으로 여길 것인지에 대한 기준과 법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실 때 생명이 있다고 해야 생명이 있는 것이지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살아 있다고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사망 가운데 있다고 하고 멸망 가운데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이 의학적으로 멀쩡하고 힘이 넘치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생명으로 여기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고 사망이며 어두운 것이며 병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보시는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목적하신 대로 존재할 때 생명이 있고 산 것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계에게 기대하는 목적과 의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면 목적 안에서 볼 때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시계뿐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동차면 운행이 되지 않으면 죽은 것이고, 전화기면 전화가 안 되면 죽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존재 역시 그 존재하는 목적, 사람을 만드신 이의 의와 뜻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면 당연히 죽은 것입니다. 사지 멀쩡하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정도로 건강할 뿐 아니라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큰 공로를 세웠고, 그 공로를 하나님께 돌린다고 전 세계인 앞에서 고백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뜻하신 인생의 목적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다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뜻하신 그 목적하심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라면 죽은 것이며 생명이 없는 것이며 그 생명 없는 육신이 의학적으로 살아있어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다 죽은 것일 뿐입니다. 설사 그 행위가 성경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위를 보시겠다고 하는 것은 행동의 움직임을 보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이 성경을 지켜내고 있는지를 보시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 행동이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지를 보시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그 행동을 자아내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과 행위를 자아내고 행하게 하는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의 육신의 행위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뜻하신 생명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닌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려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그 뜻을 자기 삶의 정체성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삼고 순종하는 것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자기 운명으로 순종하는 이를 생명 있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런 사람이 자아내는 행동, 표현하는 행위만이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그런 행위가 나오는지, 그런 행함을 자아내는 생명이 있는지를 보시겠다는 것이 바로 행위로 판단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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