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서신의 시작 부분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택하심에 순종하여 부르심을 받아서 형제를 피차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생명의 단계를 설명함으로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여정이 참 그리스도의 생명이고, 그의 편지를 수신하는 이들은 그 여정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것이기에 ‘너희’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너희’라는 것은 베드로 사도가 가진 의 안에서 <너와 나>의 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의 이러함을 거듭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벧전 1:23) 그리고 이 거듭남의 본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거듭남은 썩어질 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고, 말씀이 우리의 새 생명이 되는 거듭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이 거듭남은 재론의 여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면 우리가 거듭난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성령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는 법(Do)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의 거듭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는 말씀의 뿌리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거듭남이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가서 세례문답에 요구된 답을 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육신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거듭남을 이야기하면서 이 거듭남이 썩어질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씀하고 있는 이 ‘썩어질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 육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 썩어질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반대로 또 썩어질 육신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모순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방향의 문제입니다.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말씀에서 거듭남이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거듭남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육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육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자신을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 문답에서 “YES!”라고 하는 것에서 구원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된다는 말씀을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겉모습을 본질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단백질로 변해서 우리 육신을 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육신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한 것이 되고,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이 표현되는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라는 동물은 고양이라는 유전자가 가진 정보(의(義))대로 모양새를 가지게 되고 행동하게 되고 먹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그런 본성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가진 그런 생각은 천국에 가게 된 사람이니 그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그 지침이 성경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후의 보답을 보전하기 위하여 행동을 성경대로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선 확정되지 않은 믿음이요, 방향이 반대인 신앙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이 썩지 않을 것으로 된 거듭남은 우리가 가진 이 썩어질 육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은 다 썩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은 풀과 꽃과 같다고 하심이 그것입니다. 육신의 행위로 거듭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세례문답 앞에서 말이라는 육신의 행위로 대답하고 그 대답과 같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하여 육신으로 노력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바로 썩어질 육신으로 거듭나려는 신앙인 것입니다.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정체성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 심령에 있어 그것이 육신으로 표현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것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그것이 육신으로 표현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창세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순종함에서 시작하여 형제를 피차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의 정체성이고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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