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이 육신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가지, 현실과 말씀 사이에 간격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같은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고, 한편으로 이 간격이 크게 보이면 보일수록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사람이 자신이 가진 육신의 삶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육신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육신을 자신이 의로워지는 도구로 여기고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어 그것을 표현하는 의로운 도구로서 육신을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가 의롭다고 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신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의) 것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두신 것입니다. 사람이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는 것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그 속 심령에 거하게 되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는 나무랄 데 없는 온전한 모습이 바로 이 육신을 가진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육신은 유한하나 하나님은 영원을 말씀하시고, 사람은 유한하기에 의로워지는 일을 유한함 속에서 해결해야할 촉박한 문제로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육신을 원래 의롭게 만드셨기에 그 의로운 정체성이 영원하다고 여기시는 차이가 겹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육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심에도 그것을 잘 믿지 않고 부정하게 여기는 것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이 영원하다고 하시나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계가 무한하므로 이를 잘 믿지 않는 것은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괴리는 신앙의 근간이기도 합니다만 상당히 의문스러운 것입니다. 아니 의문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면서 영원을 논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유한함이 한스럽고 아쉬워서 영원을 보상이라도 받으려 꿈을 꾸듯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유한함에 지쳐 영원이 큰 상급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함은 단지 우리 인생이 가진 유한함 속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잘 행하므로 그 성과에 따라 주시는 보상으로서의 영원이 아닙니다. 사실 영원함은 우리의 유한함과 무관하게 항상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기 전에도 세상은 있었고, 또 죽고 난 다음에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있는데 우리가 태어나서 세상과 하나로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함 역시 단지 우리가 그 영원함에 합당하나 존재로서 하나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한한 인생에게 영원함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언어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와 일부 언어에 있는 관사가 그것을 설명하기에 너무 적합합니다. the와 a(an)가 그것입니다. the Apple은 형상은 없지만 사과라는 모든 것을 총칭합니다. 그리고 영원합니다. 반대로 an apple은 형상이 있지만 유한합니다. 한 마디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듯 썩어질 것입니다.


하나의 사과가 열매로 나게 되면 the Apple의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an apple은 사람에게 먹여지든 짐승에게 먹여지든 아니면 그냥 썩어 없어지든 어쨌든 사과로 났기에 영원히 사과인 것입니다. 반면에 an apple은 자신이 썩어짐으로 또 소비되므로 사과의 세계를 표현합니다. 그렇게 사과의 유전자를 가지고 사과의 정체성을 표현하므로 그 사과는 비록 먹혀져서 소비되어도 사과로서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함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the Christ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같습니다. 마치 10세기에도 사과는 사과였고, 앞으로 30세기가 되어도 사과는 사과인 것과 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보고서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순종할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유전자로서 그리스도가 되심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나서 그리스도(a christ)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치 사과 열매가 사과라는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비되듯 우리 육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에 소비하고 썩어져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거듭났기에 육신을 썩어지기까지 소비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썩어질 육신의 행위나 소유의 드림으로 거듭나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방향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심이 바로 우리가 육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육신을 어떤 도구로 쓸 것인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육신은 거듭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거듭난 생명을 표현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육신 안에 그 육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의대로 이끄는 유전자와 같은 본성과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며,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하나의 사과 알이 먹여지나 영원히 사과의 정체성을 가졌듯, 우리 이 유한하고 썩어질 육신이 비록 소비되고 약해지고 썩어지나 하나님의 의의 말씀이 우리의 육신으로 표현될 때, 그렇게 소비하여 우리의 삶을 살아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심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에 우리가 영원함을 얻는 비밀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