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사랑’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면 떠오르는 남녀 간의 사랑은 알다시피 에로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혈연 특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범주를 스톨게라하고 친구간의 사랑을 필로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아가페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사랑 곧 우리가 아가페라고 알고 있는 사랑은 의미를 부여하고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쉬운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같이 조건 없이 사랑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존재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라는 것만 정해지고 서로가 그것을 순종하는 관계가 되면 그 존재의 정체성이 자기의 본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유전자와 같이. 그것은 그 본성으로 사는 것을 스스로도 막을 방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유전적으로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태어나는데, 남자로 난 자는 자기가 원치 않아도 남자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그 의미는 서로를 향하여 어떤 조건도 없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내용과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쇠로 만든 자동차의 모습은 사람이 이동하겠다는 목적이 형상화 된 것입니다. 이동이 그 내용이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동차가 형식입니다. 이것을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서로에게 절대적입니다. 자동차가 가지는 모든 안전 기능, 주행 기능 또 각종 기술은 나날이 발전합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이동’이라는 목적 곧 내용을 위함에서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더 안전한 이동, 더 편하고 빠른 이동을 제공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합니다. 그야말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간음하지도 않습니다. 차가 목적을 벗어나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정한 내용 곧 사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게 만듭니다. 사람들에게 그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고 하나님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주실 수밖에 없는 본성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예수님 역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인하여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야말로 뜨겁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레미야가 스스로 다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고 해도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다고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관계로 하나가 되었을 때는 그 상호작용인 사랑을 금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위협이나 적신이나 칼이 이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되는 그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가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고 하니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뜨거움의 동력과 연료를 스스로 쥐어 짜 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간은 가능하고 되는 것 같지만 이내 다 식어버립니다. 그것은 속에서 넘쳐나는 생수와 같이 생명의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서 동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본성은 본성으로부터 안에서 밖으로 나타나기에 생명이 있기만 하면 언제나 발동되고, 언제까지나 나타나지만 자동차의 연료와 같이 밖에서 안으로 주입한 것을 이내 동이 나고 공급해야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기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이 자기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생명의 본성,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사람의 존재 목적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본성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듯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의미가 되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삶의 목적과 내용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를 또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더할 나위 없는 뜨거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그를 위하여 주시고, 그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려고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된 관계로부터 본성이 되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의 삶의 모습,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과 본성을 가진 사람은 형제, 곧 자신과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을 보면 피차 뜨겁게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볼 때 그 속에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본성을 보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본성이 나오는 것을 보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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