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진리와 진실은 의도된 존재가 되어 그 존재로서 가진 본성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어떤 존재에 대한 존재의 목적이고, 진실은 그 존재의 삶과 행함이 그 존재의 존재 목적 곧 정체성대로인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진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이고 진실은 그 목적이 사람의 본성이 되어 그것이 표현될 때 진실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짓이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짓은 행위와 말의 일치나 상태와 말의 일치가 어긋나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짓은 노릇과 외식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맞지 않는 표현 곧 행동과 말과 생각입니다. 자신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존재인데 율법을 지켜서(야) 의롭게 된다고 여기는 것이 거짓입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지키려는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늘 우리에게 자신의 죄를 시인하면 용서하신다고 하시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대로 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상태, 곧 하나님의 의와 뜻을 알지 못하여 인생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그 고백은 온전하고 진실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생이 존재하는 목적을 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모든 순간 진실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그 사람의 존재 목적이 되면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이 다 진실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임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잘 믿지 않습니다. 사람이 생각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하면 된다는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인 사람이 죄를 마구 짓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영혼을 깨끗게 하는 진리를 가진 성도들이 형제를 거짓 없이 사랑한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자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로 받은 사람은 진리로 영혼이 깨끗해진 사람은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만 그 속에 있으면 된다는 말씀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행위로 의롭게 되려 하며, 교리에 매몰되었으며,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기는 믿음 없는 오늘날의 교인들이 ‘사람이 믿음만 있으면 되겠느냐?’, ‘그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막 지으면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의 의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그렇지 않음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다는 것은 안에 있는 것이 삶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진실되지 않고 거짓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어 그것이 생명과 본성이 되어 그 의가 삶으로 행동으로 말로 또 생각으로 나타난 이들이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뿐이거늘, 하나님을 믿는 이가 죄를 마구 지을 것이라 가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부정하다고 여기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생각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짓된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의 말에 ‘~다워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실된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이 가진 본성이 그가 가진 형식인 육신과 육신의 행위와 말과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 참된 것입니다. 양을 잡아먹는 늑대는 잔인해보일 수는 있지만 거짓된 것은 아닙니다. 사자나 양이나 모두 그것이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의 탈을 쓴 늑대는 늑대인데 양인 척 하기 때문에 거짓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합당치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은 의아 뜻대로 살지 않았다면 그렇다고 고백하는 것은 진실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말씀하심은 진실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 하나님과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이 육신으로 보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고 그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그 역시 하나님과 하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진실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진리와 진실함이 있다면 당연히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이를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하려면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감정도 사람 마음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안에 있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 역시 성경에서 시키니까. 그래야 천국 가서 복 받는다고 하니까 억지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복락이나 천국에 가서 잘 살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계략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도 모르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형제를 볼 때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이 동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안에 그럴 수 있는 본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본성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이 자기 안에 있어 그것이 표현되는 것이 바로 진실된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 먹고 한다고, 신념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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