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6-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3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10. 18. 10:04 Writer : 김홍덕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에 있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경건의 상징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종일 것입니다. 누구 앞에 겸손하게 서겠다는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겸손하게 선 그 상대의 의에 자신을 맞추겠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싫어하신다고 하심도 같은 맥락인데, 잘난 체 하는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의를 굽히지 않는 것을 목이 곧다, 교만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다는 것이나 순종한다는 것은 이중성이 있습니다. 그 먼저는 금도끼 은도끼 동화에서 나오는 욕심쟁이 나무꾼과 같은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믿는 마음 그 자체가 순종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신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기에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단지 세상의 성공과 같은 것에만 한정합니다만, 이것은 더 광범위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앙을 좋게 여기시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라는 것까지 생각을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앙이 좋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께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제사며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하나님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흔한 예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나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자신을 보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평안한 삶을 뒤로하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겸손이고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하게 비난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 기대하시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목적과 기대는 사람으로 보내신 그 보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외지로 선교를 가는 것 보다, 사람으로 보내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먼저고, 그것이 겸손의 근본인 것입니다. 


그 순종과 겸손으로 살다보니 어떻게 멀리까지 삶을 옮기게 되기도 하고, 그렇거나 말거나 언제나 사람으로 보내신 뜻을 좇아 살면 아프리카로 가든 한국에 살든 그것이 선교고 복음 전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과 겸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신앙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은 하겠다면서 그것을 순종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하러 가겠다는 것이나 세상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순종은 의외로 ABC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근본적인 기초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의를 상대에게 맞추어 순종한다는 것이 겸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겠다는 것은 인생으로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의와 생각을 하나님의 의에 맞추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믿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순교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하나님을 크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교라는 것을 자신이 먼저 설정한 상태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을 자신이 정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모든 것에 앞서 인생으로 자신의 삶을 주신 그 뜻을 먼저 아는 것이 순종의 출발이고 겸손의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뇌까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만 무슨 뜻인지 알아도, ‘영생은 하나님과 독생하신 그의 아들을 아는 것’이라는 그것만 알아도, 아니 매주 한 번씩은 외우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라는 것이 진정한 자신의 신앙고백이기만 해도 하나님께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 보다, 자신에게 인생을 주신 이유와 목적을 알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께 뭔가를 하려고, 시키시기만 하면 순종하겠다고 기도하고 떼를 씁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마도 하나님은 ‘내가 너를 세상에 보낸 의와 목적이나 잘 달성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이 먼저 있었음에도, 그 목적을 상실한 자신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퍼포먼스(행함)로 보고, 그것에 자신도 행위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의 말과 같이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까?’라고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예수님도 무엇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목적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가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순간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의로움과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다고 스스로 정의내린 그것에 매몰되어서 자기 생각에 하나님을 믿으려면 뭔가를 가지고 가야지, 뭔가를 드려야지, 어떤 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지 주장하므로 교만을 떨지 말고서 보내신 그 뜻에 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불순종하는 마음의 눈으로 보면 ‘좋은 것’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과 간음하듯 혼용되고, 그래서 교회를 크게 지어 하나님께 바치자고 하고 서울을 하나님께 바치자고 하며,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며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을 불러 간증 집회를 하고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가 선지자가 앞서서 책망한 내용이고, 이제 그것에 반하여 아니,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전하는 회복의 말씀으로서 그런 불순종과 교만과 간음과 같은 수양의 기름을 가지고 가는 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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