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6-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10. 14. 07:37 Writer : 김홍덕

인자를 사랑하는 것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자 곧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고 또 좋은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과는 좀 다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열거한 것들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 그것도 위대한 사랑에 해당하는 것들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을 때에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느라 오히려 많은 것을 놓칩니다.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을 보면서 사랑, 그것도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에 집중하느라 사람이 자기 몸을 사랑 없이 불사르게 내어줄 수 있느냐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화영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내어 주는데 국가나 의나 사람을 사랑함 없이 가능한 것이라고 그냥 가정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세상에는 흔하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습으로 어떤 것을 사랑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기에 자기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구하느라 자기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음은 물론이고,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하여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독교인들만 그런 것이 사랑 없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열거한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의 모습 그 자체이며, 사람들이 가장 숭고하게 여기는 것들의 상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사랑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 소용이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역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의도하시는 사랑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단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사랑, 그것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인하여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괴변이나 트집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아주 중요한 구분(거룩함)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구분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십자가도 사랑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사람에게 그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다고 하신 것은 창조주이시기에 그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자기 피조물이 자기 스스로의 결정(순종)으로 알 수 있도록 그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므로 그 창조의 목적을 보이시기까지 그것을 알게 하시려 하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드려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뜻을 보이신 것과 같이 사람에게 그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는 삶을 사는 것, 그 존재의 의미를 알도록 전하고 수고하는 것에 자기 육신의 삶을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우리가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할 것이 그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또 요한 사도가 그렇게 절절히 전한 사랑이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한 삶속의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에 그 상태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매진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도 그 맥락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답답해하시며 행위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늘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자신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깨달았다면, 지치도록 살아가는 자기 모습을 보며 그렇게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면[각주:1] 그 시작이 왜 있었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식 가능한 존재로서의 마땅한 것인데, 누구나 살면서 그 의문을 가졌고, 답을 얻지 못한 체 살면서 기껏 의미를 부여한 것들도 존재 이후에 가진 것들에 대한 의미를 잔뜩 부여하고 그것에 동의하면서 그 중에서 숭고한 것을 규정하면서 사랑이라 논할 뿐이며, 그 중에서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하는지를 고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의문,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존재하기에 벗을 수 없게 부여된 이 삶의 시작의 이유를 알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있어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 그 이상의 사랑이 없는데,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위하여 의인이심에도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 자체를 사랑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야하는 것이라고 미가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이 궁금증 그 하나로 사람들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듣지 못하였노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바울 사도가 로마서 1:20절에서 말씀하고 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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