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6-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10. 7. 10:53 Writer : 김홍덕

공의를 행하는 것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6-8)


이 본문은 어쩌면 미가 선지서의 주제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변론하시는 속에, 혹은 그것에 연결되어서 이 말씀이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개념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 한정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정말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의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년 된 송아지, 천천의 수양, 넘치는 기름과 같은 것은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물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사울 왕을 책망한 사무엘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과 같은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한 마디로 우리가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보이시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보이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 선한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은 먼저 공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공의라고 하면 단어 자체의 의미로만 본다면 공평한 의로움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공평한 의로움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역량의 차이를 고려하자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단지 사람이기만 하면 그것이면 충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움을 나타낼 수 있는 세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는 의로움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란 존재를 만드신 목적 그것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영이신 하나님의 실존을 사람이란 육신이란 형식을 가진 존재로서 그것을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순간 이미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가능성이 있고 예비 되었다는 것) 다만 자신이 그것을 인정하므로 자기 삶의 목적이 그것에 있다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존재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낼 모든 예비가 다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여호와 이레인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도 바로 이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내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고 구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존재한 것은 기존 명제로서 삶을 생각합니다. 존재했으니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 또 자아실현인지, 또 행복인지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삶의 의미에 대한 모든 신앙과 철학과 학문이 다 What to do?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지식의 한 파트에 진화론(진화의 목적은 없이)과 같이 근원에 대한 의문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든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기대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와 연관이 있는데, 예수님의 그 말씀에는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선함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지 아닌지에 따르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자신이 어떤 물건을 만들거나 살 때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물건이 자신이 의도한 목적에 부합되면 부합될수록 선한 것이고,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에 반할수록 악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을 견디지 못해 버리거나 중고로 팔거나 반품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범죄한 인생들에게 진노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송아지를 드리듯 십일조하는 것이나, 천천의 수양을 드리듯 봉사와 헌금을 하는 것이나,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는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서 자신의 행위와 그 공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그 뜻을 알고서 행하라는(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아는 것이 선하심이고, 그 선하심은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게 주신 것이기에 온전한 공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