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선지자는 야곱의 남은 자들이 많은 백성과 열국 사이에서 그 나라와 백성을 이겨낼 것이라고 선언한 다음에 이어서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어떻게 보면 변덕스러운 것 같습니다. 방금까지 야곱의 남은 자들의 회복을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야곱의 백성들에게 멸망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1) 말과 병거를 제거하고, 2) 땅에 있는 성과 성읍을 무너뜨리며, 3) 복술과 점쟁이가 없어질 것이며, 4) 우상과 주상을 멸절시키며, 5) 진노와 분한(분노)로 청종치 않는 나라에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언뜻 이방인에게나 할 법한 하나님의 심판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야곱의 남은 자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본성이 되는 사람 안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독 심판에 대한 말씀이 많으신데, 그 내용은 사실 오락가락 합니다.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가, 세상을 심판한다고도 하시고 나중에는 성령이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그것 자체가 이 땅에 심판이 임한 것이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의도는 구원이지만, 오셨다는 그 자체가 심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안에서 말씀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이 말씀도 마치 요한복음에서의 심판과 같아서,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난 아이 곧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은 여러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사자와 같이 나타낼 것인데, 그런 야곱의 남은 자와 같은 사람 안에는 지금 미가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본성이 되면 그 사람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데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 바로 미가 5장 후반에 나오는 심판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심판을 목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생명이 나면 일어날 일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일들은 먼저 말과 병거를 제거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과 병거는 한 마디로 전쟁에서의 공격 무기입니다. 그리고 공격을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자기 의의 주장의 의도와 수단 그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는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것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땅의 성읍을 파괴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기 방어적인 마음을 없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순종만 하면 되는 존재임에도 언제나 자신의 어떤 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급적 육신을 쓰지 않고, 즉 귀찮은 일 없이 하나님을 믿고 자기 바라는 것을 성취하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복술과 점쟁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복적으로 신앙하는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사람들이 자신의 육신의 수고나 자기 가진 것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성읍을 가졌다고 했는데, 지키려는 것은 또한 가지려는 것이고, 그 가지려는 것을 얻는 것을 복으로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알고자 하고 그것을 행하려는 마음이 바로 복술과 점쟁이인 것입니다.


점을 보고 복술을 행하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에 가장 최소의 투자로 그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효율을 높이는 수단과 방법이 복술이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입력 대비 높은 출력을 기대하는 극한에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잡고 공부해야 하는데, 부적 하나 붙이면 마음잡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그것이 복술인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더 잘 이루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은 실상 이 복술적인 것입니다. 돈 달라, 좋은 배우자 달라, 사업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자기들 딴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알고, 하나님을 복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어 나오는 우상과 주상을 훼파하신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 취급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이 하나님은 세상일에 대하여 구하면 주시는 분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존재의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일 뿐입니다.


우상 곧 자기 손으로 새긴 우상과 주상과 목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자신들이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관계를 물으시는데, 사람들은 자기 육신의 정욕이 바라는 세상의 성공과 같은 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개조해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존재의 하나님을 공로와 소유의 드림에 반응하는 신으로 개조해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가 우상과 주상을 훼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신앙을 버릴 것이며, 자기가 설계하고 의지했던 하나님을 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버려야겠다.’라고 의지를 가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냥 버려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정도가 되어야 예수를 바로 믿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마다 가진 자기 세계, 자기가 옳다고 정의 내린 자기 세계, 곧 나라가 멸망할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없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려 지키려던 것이 무너졌고, 하나님을 대상으로 복술을 기대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새기고 개조해서 믿는 것이 그치면 그 사람은 자기만의 나라가, 자기 의로 다스리는 자기 세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의 심판에 대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 안에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심판이고 변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일어나는가 보자!’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 날 자신을 보면 자기 안에 있던 그런 본성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미가 선지자가 말씀하고 예언하고 있는 심판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아는 것과 같은 마음을 스스로 이기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이 자기 안에 없는 것이고,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자기 안에 이 심판들이 새겨지고 본성과 같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며, 야곱의 남은 자요, 베들레헴에서 난 생명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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