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1:1-7) 하나님의 예언의 본질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7. 21. 09:19 Writer : 김홍덕

구약 성경은 그 시대적 배경이 이해하는 것에 제법 도움이 되는데, 그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의 특성과 같은 것은 어느 정도는 연구가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불확실한 것이 많고, 그나마도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는 힘듭니다.


따라서 본문을 구구절절 해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반대로 성경이라는 책이 전하는 기본 주제를 바탕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경 속의 특정 부분이 아무리 어렵게 느껴진다고 해도, 결국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인하여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사 선지자는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언급이 없다는 것인데, 보통 이런 경우 그 신분이 드러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하니 쉽게  흙수저였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요 예언의 내용들은 남왕국 유다에 많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미가는 선지자인데, 좀 쉽게 말하면 예언가입니다. 무엇인가를 먼저 남들보다 미리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금리나 복권 번호와 같은 것을 미리 아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미리 알고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언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서들의 내용들도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방 나라가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부수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끌고 가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과 같이 보입니다. 사실 그렇게 서술되어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예언을 주시는 하나님의 정체성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행위>를 자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이를 인하여 다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은 행위를 보시는 분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의롭게 여기는 분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여기고, 또 하나님의 예언도 그 맥락에서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당이나 신접한 자들이나 영화나 소설 같은 것에 나오는 퇴마 이야기들과 별다른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단지 심판하고 재앙을 주관하는 절대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각종 잡신으로 바뀌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이 다 같은 구조가 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 차이가 하나님의 거룩함(구분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은 절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듯,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이 달라지고 그것을 예언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그것이 행위를 의롭게 여기시는 것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그런 것과 궤를 같이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름 <여호와>가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심이 그것입니다. 풍요나 다산이나 무엇 행위를 의롭게 여기는 신이라는 식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예언은 어떤 존재에게는 존재의 본성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어떤 존재에게는 존재의 본성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다고 외칩니다. 그 선지자들이 말하는 죄는 바로 하나님이 죄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사람들에게 ‘너희가 죄를 범하였다.’고 외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는 것을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무엇을 죄로 여기시는지에 대하여 상고함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상고함이 없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를 선지자들이 말하는 죄로 여과 없이 동일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는 행위, 곧 Do에 관한 것이고, 행위를 규제한 법률이나 도덕을 어긴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짓 하면 벌 받는다.’는 일상적인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존재의 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라는 말의 어원이 ‘자리를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하말티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은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존재의 정체성은 흔히 사용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일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어떤 존재가 가진 정체성이라는 의미로, 존재가 존재하는 목적과 의미가 근간입니다. 즉 존재의 정체성은 존재의 존재 목적입니다. 따라서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은 존재가 존재하는 목적을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존재의 신으로서 사람들에게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두신 목적이 있는데 사람이 그 목적을 벗어났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은 사람과 어떤 존재적인 관계를 계획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형상’은 이미지(image)로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진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즉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는 것을 삶으로 표현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신데 사람들은 행위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근간입니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성경을 읽고 그것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시고 자기 장래에 일어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행위를 하면 하나님께서 상이나 벌을 주시며, 그 상과 벌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아는 것이 예언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의 근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어떤 행위를 드려서 장래에 위험을 제거하고 복을 받을까 고민하고 또 자기 행위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언을 들어 알고 싶어 하는데 그런 생각과 가치관과 욕망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언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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