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1:1-7) 하나님의 계획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8. 1. 07:17 Writer : 김홍덕

이렇듯 하나님이 정한 자리를 떠난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즉 스스로 높아진 자,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정체성이 아닌 다른 것과 짝한 음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것을 외쳤습니다. 그것이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마리아가 들의 무더기 같고, 포도 동산 같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높은 것을 낮추신다는 것입니다. 또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낸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돌과 같은 완곡한 마음, 또 돌과 같은 자지 자신이 스스로 정한 법을 다 제거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당연히 우상을 훼파한다고 하셨습니다.


미가를 시작하면서 먼저 예언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언이라는 것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를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고 그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체성이 정해지면 그 정체성에 따른 내일의 운명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우신 뜻을 이루지 못하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근간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을 위하여 살게 하는 것에는 어떤 모자람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계획과 뜻과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생각합니다. 즉 자신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일 중에서 선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들이 자기들에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 아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회피하는 일들도 다 하나님의 경영하심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볼 때 놀라고 두려운 일도 하나님의 성품이 표현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두려운 일이 자기 일이 되는 사람들 역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고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버리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 특히나 그 옳다는 기준은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아비의 유전에 따라 얻은 것인데 그것을 좇아 살아갑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표현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은 진노인 것입니다. 즉 진노하심도 하나님의 성품이고, 그 진노의 대상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셔서 모든 우상을 훼파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기생의 값, 곧 간음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재앙과 같은 것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는 하나님의 온전한 경영과 성품의 표현이지 일시적 흥분을 참지 못하여 화를 발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신이 가지신 성품은 그 정하신 것이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죄를 지을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죄를 지으니 그것에 대응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이 자기의 뜻과 하나님이 사람 지은 뜻을 다 볼 수 있게 하시고 그에 맞게 대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 곧 사람을 통하여 그 성품을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사람을 지으신 뜻을 분명하게 알고 세상의 경영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는다면 세상과 사람이 그 하나님의 의와 뜻에 부합되는지는 자연스럽게 알 것이고, 그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인지도 분명한 것입니다. 어떤 존재는 어떤 결과를 얻는지를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이라는 것도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 하나님이 어떤 반응을 하신다는 식이 아니라, 어떤 존재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존재 정체성에 따른 본성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에 하나님이 정하신 존재 정체성을 버리고 사는 것은 곤고한 일이 될 것은 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물건도 그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거나 용도의 범주를 넘어서 사용하려고 하면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물속에서 다림질을 하려고 하면 그 기술적 노력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해진 것입니다. 다리미의 정체성을 알고 물의 정체성을 알면 그것을 물속에서 사용하면 큰 일이 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성경의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며, 무엇보다 이 세상은 그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어 있고, 그 뜻에 반하여 살면 온갖 곤고함을 겪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고난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에 반하는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형통이라는 것,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이 수고하고 섬기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형통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육신의 평안이 곧 하나님의 복이라 여기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간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평안이 하나님의 계획이라 여기는 것은 바로 세상이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듯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서 육신이 평안해지는 것, 육신이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자리에 올라 평안해지는 것을 형통이라 선이라 또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기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간음한 것이고, 또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자리를 떠난 것이기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성소에서 나오셔서 높아진 것을 낮추고, 간음한 땅을 평탄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사람들의 타락을 기점으로 수립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에 계획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서 자기 육신의 평안과 성공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여기면서 사는 곤고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 성취되는 것을 맛보기는 하나 근원적으로 인생을 곤고한 것으로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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