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1장) 오히려 곤고해지는 삶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8. 5. 10:16 Writer : 김홍덕

미가 1장 8절 이후에 길게 언급된 내용들은 당시 성읍들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재앙을 내리실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도시들의 언급 순서가 앗수르의 침량 과정과 유사하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하나씩 현미경적으로 보기는 좀 어렵지만 하나님의 재앙이 광범위하게 미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사건들을 파편화해서 어떤 사건에 대한 어떤 결과나, 혹은 어떤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현실의 희생이나 대비와 같은 문제들에 집중하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생의 절대 과제인 것과 같이 삽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인생이란 그런 지엽적인 것이 본질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삶의 지엽적인 부분에 치열할 것이 아니라 동행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고 깨닫는 것과 같은.


예언이라는 것을 삶의 한 절에 속하는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나, 그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성경에 기록된 것을 행동으로 지켜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반대로 원치 않는 것을 방지하려는 신앙들, 그런 가치관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삶의 사건들을 파편화하여 보는 것입니다.


이렇듯,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는 신앙,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신앙은 다 같은 부류입니다. 한 마디로 삶의 본질적인 것, 삶이란 것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삶의 본질적인 것은 망각하고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과 사건을 삶의 본질로 보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이없게도 늘 자기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서 보는 삶의 파편들, 살면서 겪는 일들과 눈에 보이는 사건들로 인하여 늘 곤고함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믿는 방식도 자기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 형식에 관한 것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신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면 그래도 할 말이라도 있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들이 우리 인생의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을 보고 의롭다 여기는 분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라는 존재 자체의 정체성을 인생의 본질이라고 보고 계신데, 사람들은 인생의 존재 목적이라는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것은 보지 못하고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 자기가 하는 것, 스스로 나지 않은 자기 자신 안에서 꾸는 인생의 꿈과 같은 것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의 진노가 각 성읍에 미칠 것을 예언한 것은 이스라엘이 눈에 보이는 삶의 모습을 인생의 본질로 보는 하나님의 정한 존재의 목적을 떠난 간음을 행하였기에 사마리아를 수치로 여기듯 하나님께서 그것에 진노하신다고 하고, 그 진노가 모든 성읍에 미친다고 예언한 것은 사람이 인생 자체의 존재 목적을 생각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서 살면서 겪는 문제와 사건에 매몰되면 오히려 모든 성읍이 곤고해지듯 인생의 모든 것이 곤고해진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건강이나 사업이나 자식이나 시험에 관한 문제와 같이 삶에 딸린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간음하고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그런 것이나 걱정하는 존재로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겠습니까? 인생이 살면서 자기 삶에 닥치는 일들은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순종은 육신의 수고를 수반하게 되어 있고, 그런 수고와 육신으로 섬기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순종을 하지 않고 자기 삶에 일어날 일들을 신앙으로 회피하거나 바라는 것을 신앙으로 이루려 합니다. 그 바라는 것은 또한 완벽하게 세상에서 성공과 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배필로 삼으니 그것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다른 것이기에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간음한 삶은 사람들이 살면서 그렇게 신경을 쓰는 삶의 단편들에 끊임없이 곤고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더니 많은 성읍들이 진노하심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을 떠나서 삶의 문제들에 집착했더니 오히려 그 문제들로 인하여 인생이 곤고해진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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