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복음) 5:21-26 노하지 말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3. 30. 13:44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은 예외 없이 화를 낸다. 그 빈도와 이유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긴 하지만 그 누구라도 마음으로 조차 사람에게 욕하거나 화를 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이미 살인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율법의 조항에 비하여 더 강화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시고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살인한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은, 그런 말씀을 하심으로 율법이 완성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구약시대, 예수님 오시긴 전 보다 더 강한 율법의 조문 아래 사람들이 놓이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먼저, 사람이 율법을 행위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조차 화내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없다. 그렇다는 것은 화내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지켜내려 한다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다 죄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율법의 목적이 완성되는 것이다.


율법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 곧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인생이 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 그 과정에서 율법은 사람이 죄인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바울사도가 로마서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사람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조차 행동으로 지켜 내려 한다. 의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지켜내면 자신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같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방향이 반대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지켜지는 것이다. 필연적이고 수동적이다. 생명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지는 것이지, '예수 믿는 사람이니 성경대로 살아야지!'라고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형제를 보고 화를 내면 살인한 것이라고 하신 것은 율법으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더 드러나게 하는 것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셨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더한 뜻이 있다. 영어성경(KJV)으로 보면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보실 때 합당한 이유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노하지 말라고 하시고는 3년 뒤에는 성전에 가셔서 상을 뒤엎고 화를 내셨다. 그것은 모순 같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유는 한가지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인생이 되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재물을 바치거나, 성전 청소를 하는 봉사나 금식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선지자들로 수 없이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람이라는 형식 안에 하나님의 의를 채우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의와 목적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 주셨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이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생으로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사람은 화내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 화내는 것은 이유 없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합당한 이유 없이 화를 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진노하심과 같이 사람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에 있어 그렇지 않은 것을 볼 때 화가 나야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이유로 화를 낸다는 것은 살인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뜻하신 목적 밖에서 화를 내는 것은 그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있어 서로에게 끼치는 불편함과 영향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분노케 하는 자신 만의 기준 때문이다. 그런 것은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니다. 율법이 살인하지 말라고 한 것은 사람을 죽이고 싶은 모든 것은 화내는 것과 같은 이유이기에 그것을 참아내는 것으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과 육신으로 보내신 이유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화를 내지 않으려면 화를 내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육신에 대하여 자신이 가진 기준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기준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신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 만의 기준을 가지고 그것을 어기는 것에 화를 내는 것은 성악과로 인한 것이고,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아담은 화를 낼 기준도 그 안에 없고, 사람이 육신을 가졌다는 것이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은 이 연약한 육신, 지금은 서로가 육신이라 서로에게 화를 내는 이 육신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로 만족(에덴)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낸다. 그것은 본성의 일부이다. 그러나 그 화를 내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육신의 것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에 대하여는 참는다고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사람이 서로의 육신으로 인하여 화를 내는 이유가 없어져야 율법이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화를 내면 살인한 것과 같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심으로 행위로, 의지로 화를 참아내려 하는 것이 죄가 되게 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이유, 하나님의 이유,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 안으로 사람을 인도하기 위하여, 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에 있어서 마땅히 할 바를 하지 못하는 성전의 모습과 같은 것에는 또한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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