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고, 정치권이나 스포츠 등에서 수장들이 바뀌거나 시스템이 바뀔 때 자주 등장하는 명언처럼 되어 버린 성경말씀이다. 이것은 이 문장 자체로서 나름의 교훈이 있다는 의미이지만, 단순하게 새 술이라고 하는 것과 새 포도주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좀 다른 표현이다.


그 이유는 포도주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이다. 포도주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을 <나는 포도나무>라고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포도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특히 포도주는 포도를 짓이겨서 그 속을 짜내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그 안에 있어 육신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나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 옷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즉 그것은 포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과 부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특별히 예수님께서 생베 조각을 붙여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신앙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하는 하나님의 의와 세상의 의를 섞어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신앙에 있어 하나님의 의와 세상의 의나 다른 것을 섞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늘 하나님의 성전에 이방신상을 두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이 땅에서 잘 살고, 축복 받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을 정도로 성공하고, 또 천국에 가서 잘 살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제대로 생베조각을 헌 옷에 붙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옷이 신분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 먼저고 그 다음이 옷이다. 군인이라 군복을 입는 것이지 군복을 입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님과 같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 옷과 같이 그 믿음을 표현하는 삶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령이 되어 그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지, 생베 조각을 붙임 같이 성경 말씀을 조각으로 또 지식으로 알거나, 또 과정이나 뿌리 없이 함축된 교리를 믿는 것이면 족하다고 하는 것이 생베 조각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과 정체성을 헌 옷인 세상적인 삶에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전과는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바로 고후 5:17절의 말씀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포도주 부대와 같고,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육신을 가진 이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전혀 다른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아이폰이 스마트폰이라는 세계 안에 있다는 것과 같은 표현으로 한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라는 생명 세계 안에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아 정체성이 사람의 본성이 되면 그 사람에 포도주 부대와 같은 육신의 삶이라는 형식이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으면 그 삶이 새 부대와 같이 전혀 다른 삶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마음 안에 온전한 것이 있으면 그 삶이 새롭게 된다는 것이고, 포도주가 안에 있다는 것은 혼인잔치에 있어 신랑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며, 사람에게 있어 있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인 그리스도의 품성, 그것이다. 그것이 혼인잔치의 신랑이고, 새 포도주며, 그것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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