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12 핍박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3. 24. 15:39 Writer : 김홍덕

핍박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디오그모스(διωγμός)' 인데 '디오코(διώκω)'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추적하다, 박해하다, 뜻을 따르다'와 같은 의미들이 있다고 한다.(헬라어를 공부해 본적이 없어 검색하여 참조함)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언어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고, 문장에 들어갔을 때 앞뒤에 사용되는 말과 연결되어 의미가 정확히 생성되었다고 한다.(아마 그래서 서기관이라는 신분이 있었던 것 같다.)


핍박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말의 어원들을 보면 아무래도 어떤 뜻을 따르다 보면 생기는 박해를 말하는 것 같다. 뜻을 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도 연관이 있고, 뜻을 따르다보니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받는 어려움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마 5:11-12)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예수 믿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구분 없이 핍박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어려움이 전부 핍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핍박에 대한 반응과 보상도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블로그에서 정말로 강조하는 것이 몇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는 법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법인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정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십자가는 우리가 다시 지기 힘든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만약에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심청전을 읽고 감명을 받고서 바닷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심청전을 정말로 제대로 읽은 것은 효자, 효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심청전의 작가가 의도한 것이 독자에게 완성되는 것이다. 성경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다양하게 표현된 것이 성경이다. 그렇다는 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문자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성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는데 그것이 심청전을 읽고 효자가 되듯 자신의 것이 되는 것, 그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고 완성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그 코의 생기로 만든 사람이 또한 그것이다. 세부적으로 본다면 율법이 그렇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규례는 어기시면서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것도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은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핍박을 이야기함에 있어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십자가의 도 안에 핍박의 정확한 이유와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을 보면 분명히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의 군사를 불러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사람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예수님인데 끌려가셔서 사형수가 되고 사형을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약에 예수님이 초인적인 능력으로 십자가로 가지 않거나, 아니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능력을 보였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었겠지만, 육신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는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고자 한 뜻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가장 억울하게 핍박을 받으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라고 죽였으니 그만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은 저항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떨 깎는 자 앞의 어린양과 같이 말없이 끌려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받으신 핍박인 것이다.


예수님의 핍박이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원하려 하고, 또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 대상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과 같이 되려는 사람들의 핍박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대표되는 예수님의 삶에서 핍박이 무엇인지를 찾고, 우리는 또 그것에 대하여 어떤 모양으로 살 것인지를 알 때, 비로소 하늘의 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핍박받아 지신 십자가의 도와 다른 것은 핍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믿음이 생긴다. 이 믿음은 정말로 강력한 것이다. 옛날 말에 '신학생이 데모하면 막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신학생이 데모하면 그 슬로건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데모인데 죽음인들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신념이다. 특히나 데모와 같이 능동적 행동이라면 무조건 신념이다. 그건 십자가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성전(지하드)도 그런 모양 아닌가?


사람들은 신앙을 가지면서 자신과 신앙이 다르다고 대항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믿는 것이 좋아서나 혹은 자부심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믿는 것을 강요하는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대하는 주변사람들의 반응, 특별히 만류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을 핍박으로 여긴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자극하여 일어난 반응과 저항은 핍박이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핍박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자신을 보고 믿음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수고와 희생, 그리고 그것에 따르는 손해와 고통이 핍박인 것이다. 이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을 가졌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능동적으로 자극하는 것과, 내가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받는 수동적인 고난과 헌신적인 수고는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보여주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일지 모른다. 아니 그렇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헌신과 수고를 감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과 같이 보인다. 아무런 성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그런 삶을 보고서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사느냐?'고 하는 것이 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수고하는 그 수고, 남다른 희생과 그 수고가 핍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으로 사랑함에도 그리스도라는 것 자체가 싫은 것, 몰라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알면서 그것이 싫어서 십자가의 도로 살아가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렇게 산다는 이유로 박해하는 것이 핍박인 것이다. 이것은 미묘한 것 같지만 중요한 차이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생명으로 산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받는 핍박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받는 핍박이다. 그런데, 군인을 하늘의 군사로 물리치지 않고 순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을 깨닫게 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고 능동적으로 전하는 복음, 자신이 믿음을 가졌다는 선민의식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졌으므로 나눠주듯 복음을 전하며 부딪치는 저항을 핍박의 전부로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순종과 수동적인 믿음의 삶이다. 능동적으로 남다른 복음과 하나님의 계시를 가졌기에 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듯이 전해주는 그런 생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도 그 아들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섬김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을 보이시기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신 그 생명이 예수님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의 생명과 그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 때문에 수고하고, 욕먹고 비난 받고, 그것은 어리석은 삶이라 조롱을 받는 것 그것이 핍박이다. 진정한 핍박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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