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1-20 변화산 사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6. 20. 13:00 Writer : 김홍덕

<변화산 사건>은 변하신 예수님과 함께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났는데 베드로가 그 둘을 위하여 초막을 짓고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하늘에서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놀란 제자들이 엎드리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 17:5 하)

라고 하셔서 눈을 들어보니 예수님만 보이고 엘리야와 모세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탓에 좋은 것은 다 신앙에 결합시키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결합시키면 좋은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산 위에서 자신이 주로 섬기는 예수님 외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게 되니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여기 이런 상태가 너무 좋으니 여기에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면 좋겠다고 예수님께 건의를 하고 있다.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비한 기적을 많이 일으킨 선지자다. 갈멜산에 이방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불로 이긴바 되었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엘리야를 데리고 가서 죽지 않은 기적을 보인 선지자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불은 언제나 신비한 것이고, 옛날에 불은 제사장과 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관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이란 놀라운 능력 신비한 능력의 상징이고 엘리야는 그런 의미에서 불의 선지자이다.


그리고 모세는 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모세라는 이름의 의미도 '물에서 건져낸 자'라는 의미이고, 큰물인 홍해를 능력으로 건넜고, 또 물로 인한 실수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을 겪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모세를 대변하는 것은 십계명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성경에서 물은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모세와 엘리야를 물과 불을 대표하는 선지자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계시는 동안 산 아래에 있었던 일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산에 계시는 동안 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신 들린 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특징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귀신 들려서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귀신 들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의식과 생각을 주관하지 못하고 세상의 것이 사람의 생각과 의식을 주관하는 모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귀신 들렸다는 것이 단순히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미쳤다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귀신 들렸다는 것은 사람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 그 사람의 목적이 아니라, 돈이나 명예나 이성이나 권력과 같은 것을 그 의식이 최고로 여기고 좇아가는 모든 인생의 모습이 바로 귀신 들린 것이다. 머리가 빼앗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인생들은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아니라 돈을 좇고 명예를 좇는 것과 같이 세상의 것을 좇는 사람은 기적에도 의지하고 또 율법에도 의지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정말로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자신의 삶에 늘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또 어떤 규범으로 자신이 살면 자신이 좇는 것이 자신의 것이 될 것인지 늘 고민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제자들이 있어 그 아이를 고쳐주기를 바랬지만 고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고치지 못한 이유는 제자인 베드로 역시 모세(물)와 엘리야(불)가 다 함께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으로는 귀신 들린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잃어버리고서 살아가는 것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에 있어서 물과 불에 넘어지듯 모세의 율법과 엘리야의 기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파에서는 방언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도 한다는데 그런 것이 바로 기적이 없으면 혹은 신비한 체험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은 불에 넘어지는 것과 같고, 예수님과 엘리야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많은 신앙 세계에서는 신학적 근거가 없으면 또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신앙이 학문이 되었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그렇게 신앙이 학문이 되는 것은 신앙이라는 것이 율법과 같이 규례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은 예수님과 모세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인간의 정체성을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물과 같은 규칙과 원칙을 지켜내는 것에 의지하는(넘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특히나 그런 생각은 더 나아가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적용하는 각종 법칙과 규례들을 도입하고, 오히려 세상에서 운영하는 학습법과 같은 법을 주일학교에 적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과 같이 여기는 생각마저 하는데 그것은 정말로 신앙에 자신이 없는 것이고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신앙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만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면 교회는 왕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의 말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만나는 목사인 친구가 한명 있는데, 만나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교단과 큰 교회의 행태에 대하여 지적을 하게 되는데, 근래에도 만났을 때 교회가 신천지에 오지 말라고 포스트 붙이는 것에 대하여 '그건 너무 자신 없고 창피한 일이 아닌가?' 반문 했더니, 교회의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또 나중에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너무 어이가 없었다.


교회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분명히 전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을 지으셨기에 가장 사람을 잘 아시는 분으로서 사람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 또 사람이 무엇이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예수님의 정체성만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면 신천지 아니라 어떤 지랄을 하는 이단이 와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인데, 이것저것 하는 것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분명히 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고, 또한 그런 모습은 엘리야와 모세를 예수님과 함께 두려한 베드로와 같고, 그러하기에 물에도 빠지고 불에도 넘어지는 귀신 들린 사람과 같이 신천지나 여타 이단에 빠지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따라 다니면서 공부하라고 당부하는 것 보다, 부모가 집에서 늘 책을 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부모로서 그런 모범은 보이지 않으면서 온갖 방법으로 아이를 공부시키려고 학원 보내고 좋은 교재 사고 또 입시 설명회 다니고 해도 아이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어이없게도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데 이러느냐?'며 아이를 붙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런 온갖 수고보다 자신이 집에서 공부하고 책 읽고 있으면 자신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데 그 하나를 안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같다. 예수님 한분만 분명하게 알면 모든 것이 다 족하다. 교회는 그것만 전하면 된다. 뭔가 수련회다 봉사다 뭐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한답시고 고생하고 때로 그 일로 다투고 하는 것이 다 어미 게가 자신은 옆으로 걸으면서 새끼는 바로 걸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아이에게 공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면서 온갖 수고하면서 마치 아이를 위하여 삶을 바친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과 같은 것이며,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엘리야와 모세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마 17:5)

예수님 한분만 있으면 족하다고, 오직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정체성을 전하면 그것이 전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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