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38-46 요나의 표적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5. 25. 14:17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에 열광한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기대하고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도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정하고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죄라는 것이 있다. 죄가 자기 자리를 떠난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보면, 사람이 정해진 것은 하지 않고,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좋은 신앙이라 하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죄다.


악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악하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 이상의 것을 할 때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을 가진 세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으로만 보면 사람은 이 육신을 가지고 율법의 주신 목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율법 자체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것을 지키면 선하고 지키지 못하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바로 악한 세대라는 것이다.


사람이 만족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안식하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표적을 구한다. 즉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 사람으로서 자신의 한계와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 이상의 것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의 모습을 부인하고 그 이상을 구하는 세대가 악한 세대이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기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부인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 앞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 외에는 사람에게 보여줄 표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사람이 기대해야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 기대해야할 표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 따라서 무엇이 기적인지가 좀 다를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기적이 아닐 것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이신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의 변화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그렇게 살기로 마음을 먹는 변화 그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탈 인간, 초인적인 인간,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간만이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자랑 할 것 보다 감추고 싶은 것이 더 많아 보이는 이 육신을 가진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떤 악한 세대가 바라는 기적이라도 일으켜서 내려오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셨을 때와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진화론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성경에 사람의 모양이 달라졌다는 기록은 없다.(단지 수명이 짧아졌을 뿐.) 심지어 선악과를 먹음으로 신체에 다른 변화가 일어난 것도 없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던 그 사람과 지금의 사람은 같다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길 뿐.


사람이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혼자서 하는 일이 들통 나는 것을 난감해하고, 감추기 위하여 옷을 입고 사회적으로 여러 신분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또한 능력을 덧입히는 것은 다 원래의 모습에 불만이 있어서이다. 그래서 그 불만스런 모습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기적이라 하고 늘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바라고, 또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악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이다.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발가벗겨져서 못 박히셨다.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신 것이다. 육신이 벗었다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벌거벗은 듯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사람의 모습 그대로가 악한 세대가 표적을 원하는 가치관으로 볼 때 전혀 기적을 일으킬 수 없는 주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신을 주장하셨기 때문에 발가벗겨져서 죽으신 것이다.


그것이 요나의 표적이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와 모습이 요나의 표적이라는 것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것과 같이,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도 도리 수 없고, 유대인의 왕도 될 수 없는 사람의 원래 모습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함으로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시려고 삼일 만에 살리신 것, 그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볼 때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는 사람 그 자체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진정한 기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볼 때 절대로 안 되는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볼 때, 육신을 가진 이 인생은 하나님의 아들은 고사하고 사회적으로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존재인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만한 기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말로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사람이 육신 가진 삶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생의 온 힘을 쏟다가 그것이 아니라 원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고,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십자가의 기적이고, 그것이 바로 탕자의 비유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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