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8 안식일의 주인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5. 19. 16:48 Writer : 김홍덕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고 예수님께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답변을 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에 기록된 것인데 그것을 어겼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스스로를 말씀하신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특히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 율법이라는 것은 목숨을 걸기도 하는 일인데 그 앞에서 그들이 평생을 노력하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시는 것이나, 범하면 죽을 수도 있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도 모자라서 스스로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이 지키던 것을 파괴 하는듯한 말씀과 행적을 보이신 것을 두고 기득권과 매너리즘에 빠진 계층에 대한 각성을 추구하는 혁명적인 계몽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기도 하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단순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회운동적인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치나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지적하고 또 반항하고 심지어 투쟁하는 모습도 늘 있지만, 그런 것들과 예수님께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보이신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일부 해방신학론자들의 사상과 같이 사회 계층의 평준화나, 종교적 기반의 기득권과 그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만 봐도,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아는 것은 쉽고, 또 그 곤고함에 외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것일 뿐이다. 정말로 제대로 한다면 뭔가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을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율법이나 안식일이나 그것을 지키는 것을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주신 것이 아니다. 도로교통법에서 신호 위반을 하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한다고 되어 있다고, 신호 위반하는 사람을 잘 단속하여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법과 무관하게 도로에서는 신호를 지켜서 안전하게 운행하도록 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의 목적이듯, 율법과 안식일도 그와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실 때 여섯 째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너무나 보시기에 좋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의 모든 목적이 이루어졌기에 더 이상은 창조하시지 않아도 되는 결과물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이 그 유래다.


그러니까 안식일이라는 것이 크로노스의 시간 곧 달력의 날짜로 6일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것이 안식이고, 그런 날을 맞이했을 때 안식일이 되는 것이지, 신호위반 벌금을 잘 부과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날짜로 7일째가 되었다고 안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또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신데, 날짜로 하루 이틀 세어서 7일 째 되는 날은 쉬시는 그런 틀에 갇히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달력을 넘기는 시간은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지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 즉 때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12시가 점심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은 배고플 때 밥을 먹는다는 그 <때>를 시간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일은 날짜로 7일째라거나,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라거나, 아니면 일요일이라거나 하는 것은 마치 벌금을 잘 부과하면 도로교통법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식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때>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식하실 수 있으면 내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정말로 제대로 읽었다면 이게 정상인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일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너무 잘 이루어져서 그 사람을 볼 때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바로 그 때의 아담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는 온전한 상태, 온전한 정체성,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요 아들이시기에 예수님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는 존재이시기에 요일이나 절기에 무관하게 언제나 안식일을 지키시고 계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러니까 안전하게 운행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도로교통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고, 도로교통법의 목적이 육신이 된 삶을 살고 있는 도로교통법의 진정한 주인인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은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주장할 것도 아니고, 일요일 곧 주일에는 돈을 쓰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었는지 그것을 고민하고 그것을 알려고 하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안식일이 토요일이냐 주일이냐의 문제도 아니고, 주일에 돈을 쓰거나 일을 하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안식을 누리고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아닌지의 문제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이 안식할만하고 보시기에 좋다는 것은 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설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을 아는 십자가의 삶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다. 그것이 또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셨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