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예수님보다 자신의 혈육(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이것 또한 많은 신앙인들이 상당히 오해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런 오해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이나 요한일서 4장과 같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육신에 관한 헌신을 기록한 것으로만 보면 사랑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증거이자, 사람에게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먼저 있으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랑,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희생과 헌신의 모양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심령 안에 본성과 생명으로 있어서 그것이 표현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자,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젊은 남녀는 서로 끌리고 소위 밝힌다고 말하듯 혈기 왕성할 때는 이성이면 다 좋아할 수 있지만 오직 한명의 이성만을 자신의 짝으로 사귀어 가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은 그 한명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스치며 지나가고, 또 서로 얼굴은 보지만 인사도 없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중에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어떤 관계로 인하여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부여된 의미로 인하여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사랑이고 또한 그것이 삶이다. 그런 연고로 사람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없어지면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에게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또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의미를 알게 하는 것,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인생이기에 살아가는 목적과 이유와 의미를 알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수님보다 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하면 예수님께 합당치 않다고 하시는 것은 헌금보다 부모님 용돈을 더 더리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예수님보다 보모나 자식에게 두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또한 독립된 인생으로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가 다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부모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동양의 유교에서 그런 사상이 강한데,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의 근원인 부모도 또한 부모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의 부모에게 근원을 찾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부모 역시 근원의 근본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하나의 고리이기에 인생으로서 진정한 삶의 의미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그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곧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인생의 존재 목적의 표상이고, 육신을 가진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와 이유를 가지신 분이기에 그 목적과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기에, 부모나 자식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나 자식에게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 하면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합당하다는 표현이다. 여기서 특이하게 합당(worthy)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아닌 부모나 자식에게서 인생의 의미나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가치나 자격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의 본질을 모르고 자신의 신념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선악과를 먹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육신의 부모를 신앙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이 있노라 하고 그 부모를 또한 자식을 외면하면서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합당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생명의 법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육신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되듯,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그 육신을 통하여 그것이 표현되게 된다. 사랑이 표현이 된다고 하는 것은 부모나 자식에게 누가 봐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와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과 같이, 또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자신과 같이 인생의 의미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사랑일진데 부모와 자식 그리고 또한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전하기 위하여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생명의 본성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부모를 배척하지 않는다. 부모나 자식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며 부모나 자식은 돌보지도 않고 교회만 다니는 것이 예수님께 합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은 알지 못하고 모양만 아는 외식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인생의 목적을 아는 것, 또 알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 그 부모나 자식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아는 사람이 되도록 헌신하고 사랑할 것이고, 또 같은 신앙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생명을 나눈 형제로서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육신의 사랑 표현법으로 대변되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자신의 사랑으로 또한 자기 인생의 목적과 본질로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사람의 존재 이유와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기에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찾는 것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서 발견하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인생을 주신 이유를 그 안에서 발견하므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나 자식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 말씀을 알게 되었다면 예수님과 같이 모든 인생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사랑의 수고를 감당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자신의 부모와 자식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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