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4-39 검을 주러 왔노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5. 10. 19:19 Writer : 김홍덕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다른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는 색채가 좀 다르게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목적이 화평이 아니라 검(누가복음에서는 검이 아니라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심)을 주고 불화를 일으키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성경을 기반으로 이단이 된 사람들이 아주 오해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사람들에게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 그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이 말씀을 살펴보자. 이 말씀에 갈등을 일으키는 대상이 있다.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가족들과 분쟁이 일어난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을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것이다.


우선 영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인자(Son of Man)라고 말씀하실 때 Man은 대문자로 쓴다. 하지만 여기서는 man을 쓴다. 이 사람은 마치 노아의 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라는 표현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없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 곧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아들이 아닌 여자와 같은 존재들인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갈등은 다 여자들 사이의 갈등이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없는 육신의 아버지와 다툼이 있고, 성씨(하나님의 의)를 이을 수 없는 딸과 같은 인생들이 또한 그렇게 자신을 낳은 어미와 다툼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는 없이 형식들끼리 다투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이 다툰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신앙을 가진 사람과 믿지 않는 가족이나 주변인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곧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 앞에서 딸이 아닌 아들과 같은 이들은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오히려 공회에 서고, 총독과 왕들에게 끌려가서 채찍질을 당하는 것이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세상과 다툰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사람들이 비난하면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다고 하고, 핍박 받는다고도 하며, 또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께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요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같은 법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게 여자의 신앙, 곧 형식만 남은 신앙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검을 주고,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하신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능동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라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갈등이 일어나는 사람은 의가 없는 자, 하나님 앞에 여자의 격을 가진 사람, 곧 외식하는 사람들이 서로 분쟁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와 하나님의 아들은 그런 격을 가진 이들에게 오히려 끌려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으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인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과 같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늘에 닿는 성을 쌓으려 하자 하나님께서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 11:7)

라고 하시고 사람들의 언어를 혼돈케 하여 그들이 서로 다투다가 흩어지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만 가지고 하늘에 이르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땅에 내려 오셔서 서로 혼돈스럽고 분쟁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의 아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다 여자와 같은 격을 가진 존재들인데, 그들 사이에 혼돈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 영어를 사용하다 불어, 독어, 중국어 이렇게 갈라졌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 주장하고 의롭게 여기는 것이 달라진 것을 말이 달라졌다고 하시는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싸우는데 있어 언어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다 싸우고 분쟁한다. 즉 의가 다르고 무엇을 의로운 것으로, 선한 것으로 여기는지가 달라서 서로 싸우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도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심판도 함께 왔다. 즉 의의 기준이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듯,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분명한 의의 기준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기준으로 다 심판 가운데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심으로 사람들이 무엇이 의로운 것인지에 대하여 다툼이 생겼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도 사람들은 다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다툼이 일상이었으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것이 법 없는 세상의 범죄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다툼으로 정의되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다툼과 분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 곧 하나님의 의가 없고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같은 인생들이 의는 없이 자신들  스스로가 가진 의로움으로 선과 악을 정하면서 싸우고 분쟁했던 모든 것이 예수님 이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분쟁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분쟁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 오기 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분쟁이 없었겠는가? 그건 늘 있던 것인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분쟁하고 다투는 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신앙 없는 사람들을 심판하고, 또 원하지 않는데 말씀을 전하려 훈계하고, 또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며 협박성 전도를 한다. 그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신앙이 없다고, 또 때로 예수 잘 못 믿는다고 시비를 걸고 시쳇말로 씹어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다 스스로의 신앙이 여자의 격을 가진 신앙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육신으로 여자 같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영이 없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또 분쟁하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능동적으로 자극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그들에게 시비를 거시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과의 마찰도 대응이시지 아무 단초도 없이 바리새인들을 찾아가서 검을 주러 왔다는 식으로 시비를 거시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심판이 임하고, 또 분쟁이 생기고, 또 불을 던지신 것은 제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하심과 같이 예수님께서 너무나 수동적으로, 어떻게 보면 억울하고 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아들이 왜 그랬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동적인 모습으로 끌려가심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높이 들리셔서 그 모습을 보이심으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일어나고, 또 스스로를 심판하는 것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또한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일이시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기 때문이다. 즉 모든 심판과 마음이 불 일 듯 하는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먼저 능동적으로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은 그냥 끌려가고 수동적인 삶을 살 뿐인데, 그것을 본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고, 스스로 자신이 돌이켜야 한다는 마음이 불 일 듯 일어나는 법이 바로 하나님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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