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16-23 핍박과 제자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5. 6. 13:11 Writer : 김홍덕

(이어서)


그러므로 핍박을 받게 되고 공회에 서고 채찍질 당하게 된다는 것이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직접적으로 육신에 그런 위해를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겪는 일이라는 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람이 사람 사이에서 어떤 것에 대하여 누가 더 선한가? 이야기할 때 죄인이 되는 것, 그것이다.


이것은 신앙에 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나 교회와 같은 곳에서 신앙에 관한 신분(목사와 같은 신분을 말하지만 이게 과연 성경적인지는 알 수 없다.)을 가진 사람이나 신앙 좋다는 여론을 형성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신앙 없다고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그런 비난을 한다는 것은 죄인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것은 핍박이 왜 생기는가 하는 문제와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것의 표준 역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여러 가지 송사나 거짓 증거에는 일언반구도 않다가, "네가 찬송 받으실 자의 아들이냐?"하는 그 말에 "네가 말하였도다."하시고,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했을 때 "내가 그로라."하신 단 두 마디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심판 받으실 때에 송사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성전을 삼일 만에 짓는다고 했다는 등의 증언을 했지만 그런 일로 십자가를 질 정도는 아니다. 오죽하면 빌라도가 봐도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했겠는가? 그런데 그 와중에서 굳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인하여 어떻게 보면 죽음을 자초하셨는데, 그것은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명의 본성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본성이 바로 그렇게 의인이 죄인에게 죄인 취급을 받아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당연히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본성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끌려가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나고 복음이 전해졌듯이, 제자들과 오늘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 역시 예수님께서 보이신 십자가의 법을 좇아 살아가는 삶, 곧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죄인이 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안에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있고,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그 일이 어떻게 되어야 바른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 부부간의 대화, 직장에서의 생활, 길가다 부딪히는 문제, 상담원에게 전화하는 일에 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다 있는 일이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닥쳤을 때, 그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선한 일, 또 일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자신이 생각한 것들과 일이 다르게 되는 것을 수용하는 것, 그런 상황이 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공회에 잡혀가고 채찍질 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나 이는 신앙에 있어서 더 중요한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적 신념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진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단언하건데 오만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도 걱정하지 않으시는데 누가 감히 그런 것을 걱정한단 말인가? 생각해보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아는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 예수님이 죽으면 아무도 없는데도 그 죽음을 받아 들이셨는데, 오늘을 사는 사람이 자기의 신앙적 신념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다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오만한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믿음이 아니라 진정 신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기를 원하는 제자라면 그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다. 또한 핍박을 받게 되었을 때, 그것을 이기려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고 영광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타남과 같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그렇게 하는 생명이 자기 안에 있어서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무엇이 옳은가 할 때 자신이 죄인이 되고, 특히 신앙에 있어서 그런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이 핍박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틀린 것을 옳다 주장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과 같이 엄청난 일들, 손해, 그리고 피해가 생긴다. 바로 그것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핍박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를 물려서 죄인이 되어 발생한 수고와 피해와 손해를 감수한 것이 아니라면 핍박 받았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핍박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주장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또 세상이 보이는 반응일 뿐이다.


핍박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당하는 괴롭힘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살면서 받는 손해와 어려움을 감수하는 수고와 희생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이.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손해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구분(거룩함)되는 삶이다. 그 구분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다. 


만약 이것이 사람이 당하는 손해라고 생각이 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 삶은 살아보기 전에는 손해와 같지만, 살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서 잉태되고 자라나서 자신의 삶을 주관하기 시작하면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운명이고 그 영광스러움을 가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산다는 자부심과 같은 것은 아니다. 핍박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수고의 삶은 사람으로서 자신이 제 자리에 있다는 안식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핍박이고, 이것이 제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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