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에 이어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소자를 실족케 하는 것보다 소나 말이 끄는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뛰어드는 게 낫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막 9:42)

 

그런데 이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있다. 현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을 자주 간과한다. 그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정말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이 말씀에 앞서 그리스도라는 이유로 물 한 잔을 대접하면 천국에서 상이 클 것이란 말씀을 하셨다는 것도 중요하다.

 

실족시키면 안 되는 소자는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물론 여기에도 논란은 존재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삶의 평안과 성공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그런 사람이냐 반문할텐데, 그건 기도를 보면 안다고 여러 차례 설명했다. 인생의 목적을 구하는지 아니면 삶의 도움을 구하는지로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난데없는 말씀이 아니다. 어떤 흐름 속에서 하신 말씀이다. 바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참 그리스도인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가난을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참 그리스도인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목에서 하신 말씀이다. 따라서 실족시키면 안 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참 그리스도임을 믿는 사람을 실족시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실족시킨다는 건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과 결이 같다. 낮아지는 그리스도,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설득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의 문제, 육신의 삶의 문제를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꼬드기는 게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실족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교회에 가면 언제나 듣는 그 말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실족케 하는 말인 셈이다.

 

 

손이나 발이 범죄하면

예수님은 발이나 손이 범죄하면 손과 발이라면 찍어버리고 눈이 범죄하면 빼 버리라는 말씀을 이어가신다. 같은 맥락이란 의미다. 사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실 때 이미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로 산상수훈 때였는데, 그때는 오른눈, 오른손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그런데 육신의 일부가 죄를 범한다고 그것을 버리라고 하는 건 모순이다. 눈이나 손이나 발은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독자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으므로 죄를 범하는 주체는 결국 자신이다. 더욱이 천국에서는 우리 육신이 필요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버리라는 건 신체 일부가 아니라 의로워지려는 행위와 이를 의롭게 여기는 가치관이다.

 

이 말씀은 육신의 일부를 버려 나머지 육신을 구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안목을 버려 영혼을 구하라는 말씀이다. 손과 발은 육신의 행동과 노력을, 눈은 육신의 안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른손, 오른눈이라고도 하셨다는 건 육신으로 의로워진다는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함을 말씀하심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신 말씀의 부연이다. 육신의 행위로 의로워진다는, 그러니까 노력으로 성경을 지켜내려는 마음과 이 신앙이 옳은 것이라 여기는 가치관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지옥에 간다.

 

예수님은 짧게 지옥을 설명하신다. 소금에 절이듯 불로 절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건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의미다. 소멸된다면 불이 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에 더해 소금은 좋은 것이나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소금으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셨다. 역시 산상수훈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한데, 생각해볼 것은 맛을 잃지 않은 소금으로 화목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선 누가 큰지를 다투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물론 신앙마저 누가 더 높은지를 가늠하는 오늘날 신앙인들에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신앙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게 주제다. 예수님은 누가 큰지를 다투는 제자들, 예수님을 가난을 해결하는 그리스도로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구원하는,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진정한 그리스도는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는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금의 맛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다. 그리스도는 낮아지는 존재인데 이것을 버리고 높아지는 걸 추구한다면 그리스도의 본질이 사라진다. 사람의 생각처럼 가난을 해결하는 그리스도는 맛을 잃은 소금이며, 그런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신앙마저 누가 더 큰지 다투는 건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이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신앙이란 게 예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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