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14-28) 능치 못함 없는 믿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12. 30. 06:41 Writer : 김홍덕

산 위에서 베드로가 영광스럽게 변한 예수님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선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 말씀만 들으라고 하셨다. 반면 산 아래에선 어릴적부터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부모가 데려와서 제자들에게 고쳐주기를 청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셨다.

 

할 수 있다면 고쳐 달라는 간청의 말에서 불과 물에 넘어지는 벙어리를 고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아니라 믿는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아이를 고치신 한편 제자들과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막 9:23)

 

사람들은 이 말씀을 많이 인용하고 믿는다. 살아가며 겪는 원치 않는 문제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믿어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문제 해결에 대한 믿음을 말씀하고 계신 게 아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이다.

 

사람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이나 그리스도를 믿는다. 육신이 겪는 삶의 문제가 인생의 문제고 그리스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 대부분이 예수님을 이런 존재로 믿는다. 육신이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육신의 능력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기적을 기대하고, 육신이 율법을, 성경을 잘 지켜 행하는 정성이 그 기적을 부른다고 믿는다. 불과 물에 넘어지는 게 이것이고, 모세와 엘리야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게 이것이다. 사람의 이런 믿음에 예수님은 이 두 사건을 통해 믿음을 재정립하고자 하신다. 

 

지금 이 두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시간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는 존재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다는 건 그리스도는 육신이 겪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씀하신다.

 

반면 사람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다.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자기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한 이유다. 사람의 이렇듯 육신의 일을 인생의 본질로 여긴다. 그리스도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고 믿는 이유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은 육신의 어떤 문제라도 예수님이 해결해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문제는 육신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육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전하러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인생의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진정한 그리스도라는 걸 믿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건 곧 우리의 모습이자 존재 목적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뜻이다. 사랑 아들이니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심이 이런 뜻이다.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참 그리스도임을 믿는 믿음

 

그리스도를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로 믿으니 육신 이상의 능력인 불같은 기적을 기대하고, 이런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역사해줄 마음이 들도록 성경을 율법처럼 행위로 지켜내려는 신앙생활을 한다. 이런 믿음과 신앙을 바탕으로 육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가진 가장 크고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존재가, 그것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는 존재인 사람이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이상의 문제는 없다.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이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능치 못함 없는 믿음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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