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앞에 다다랐을 때, 제자 둘을 마을로 보내어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을 것이니 끌고 오라고 하시면서, 혹시 누가 왜 나귀를 가져가는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라고 하셨고, 제자들이 갔을 때 그와 같은 일이 있어 말하고 나귀 새끼를 데려와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타고 들어가셨다.

 

이 나귀에 대해 특이한 건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이다. 아직 아무도 타지 않았다는 건 그 누구도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그리스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상황을 언급하심이라고 보는 게 성경의 가장 본질을 보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언제나 나귀 새끼가 아니라 황금 마차를 타는 존재였다.

 

아울러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도 그렇다. 나귀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이건 그 나귀가 재산 가치로서 예수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는 존재라는 의미다. 예수님은 농사나 이동 같은 주인의 목적을 위해 자기 육체를 내어주는 가축인 나귀처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주장에 육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그리스도라는 존재 본성의 원본(주인)이란 뜻이다.

 

여기까지는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라면 이후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대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그 생각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것이란 기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막 11:8-9)

 

사람들은 자기 겉옷을 길에 깔고 예수님을 환호하며 영접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들은 몇 일 되지 않아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선택했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네가 만일 그리스도면 거기서 내려오라'고 조롱했다. 이게 무슨 변덕인가 싶겠지만 사실 유대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나 십자가에 못 박힐 때나 같은 마음이었다. 예수님이 자기들이 겪고 있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리스도길 바랬다.

 

우리는 간혹 힘든 일이 있었을 때 교회에 가면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또 교회가 바라는 일들을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허무하게 끝나자 돌아서며 하나님과 교회를 원망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이나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극진하게 환호하다 이내 저주하는 유대인의 기대는 같은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극진히 찬양하던 유대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돌변했다. 그건 이후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몇몇 일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배신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향유옥합의 일이 있을 때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란 말씀과 무력하게 끌려가서 채찍질 당하는 모습에서 자기들이 겪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믿음은 분노한 배신감이 되었다.

 

이 유대인들의 모습, 예수님의 기대는 오늘도 깊이 생각해야 하는 모습이다. 유대인이 숙주나물같이 변심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은 항상 이렇다.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사람은 자기 맘대로 기대하고, 자기 맘대로 환호했다가 자기 맘대로 분노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에 대해 맘대로 재단하는 사람의 태도를 성경은 죄라고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정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자기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유대인들 그리고 모든 세대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는 존재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다. 육신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아시는 문제일 뿐 아니라 창조주는 창조 목적을 위해 피조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지 않는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도 결이 같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돌아봐야 한다. 나는 어떤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 내가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는 게 육신의 문제뿐인 건 아닌지 늘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로 나는 십자가를 지는 하찮은 존재가 그리스도라는 걸 믿고 있는지, 무엇보다 나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본성으로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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