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46-52) 소경 바디매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3. 3. 1. 05:55 Writer : 김홍덕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가에 소경 바디매오가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군중의 소리를 들은 바디매오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라고 알려 주었다. 거리가 소란스러울 정도로 따르는 많은 사람과 지켜보는 이들에게 나사렛 예수였다.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부자가 영생을 구하려 예수님을 부른 호칭 선한 선생속의 선()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 선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만 한 행위다. 그러니까 부자도 무슨 선한 <행동>을 해야라고 물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고 반문했다. 세상에서 축복받는 행동을 선으로 여기면서 세상의 저주인 십자가를 지는 나를 왜 선하다고 하느냐는 반문이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준은 모두 영생을 구하다 돌아간 부자나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마음이다. 기대하는 사람이나 비난하는 사람이나 그 기준은 모두 영생을 구한 부자의 기준처럼 하나님께서 육신의 삶에 복락을 주시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의 행동이다. 나라의 독립이나 가난이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이 생각하는 오직 단 하나의 그리스도다.

 

바디매오 주변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군중이나 서서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사람이나 모두 이 기준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다. 천하고 가난하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의 선함이 없는 가난한 나사렛에서 온 예수님께서 세상을 그들의 기준으로 구원할 것인지를 보고 있다. 기준이 이것이기에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라 부르고,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에서 세상의 복락을 주는 주님으로 부른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달랐다. 그는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본 적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왕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다. 육신의 눈을 뜬 자들은 육신의 행위가 세상의 복락이라는 선을 가져온다고 믿느라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지만, 육신의 눈을 볼 수 없는 바디매오는 육신의 어떠함과 무관하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아로 바로 보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했지만,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 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니 조용히 하라고 나무랐다. 그러나 그를 더 큰 소리로 외쳤고 예수님께서 듣고 그를 오라고 불렀다. 많은 군중 속에 있어도 자기 이름 부르는 소리는 들린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신 것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셨을 때 바디매오는 자기 겉옷을 벗어버리고 뛰어갔다. 소경이 뛴다는 건 자살행위다.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전혀 볼 수 없는데 뛰어간다는 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면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부딪히고 넘어지며 다친 경험을 가진 그가 오라는 말 한마디에 전 재산인 자기 겉옷을 버리고 뛰어갔다는 건 정말로 놀랍고, 대단한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너를 구원한 믿음이라고 하신 믿음이 바로 이것이다. 단지 위험을 무릅쓴 용감한 행위나 그런 행위를 이끈 마음을 칭하시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믿고 그가 자신이 처한 불쌍한 처지를 회복시키실 것이란 믿음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예수님의 정체성 그대로 보는 안목을 가진 믿음, 이 믿음이 그를 보게 했다. 예수님을 바로 인지하고 있으니 그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소경이 보게 되는 게 앞서 말한 선함이나 육신의 축복이라고 하겠지만, 그가 보게 된 이후 세상 만물을 보러 간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간 그의 모습에서 예수님께서 칭찬한 믿음이 나사렛과 연관된, 부자의 영생과 연관된 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를 때 호소한 자신의 불쌍함은 만물을 보지 못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바디매오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보는 믿음, 이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말씀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황금마차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면, 아니면 능력을 발휘해서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와 가난을 해결했다면, 예수님을 보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게 어렵진 않다. 그러나 말구유에서 나고 천한 나사렛 사람인 것도 모자라 세상 가장 천하고 낮고 비참한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믿는다는 건 세상 관점에서 제정신 아닌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바로 구원이란 걸 바디매오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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