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과 갈라선 아브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5. 10. 29. 16:12 Writer : 김홍덕

애굽에서 나온 아브람에게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카 롯도 함께 있었고 롯에게도 많은 재산이 있었다. 그들의 재산은 금과 은 외에도 많은 육축이 있었다. 그런데 육축이 많다보니 목자들끼리 다투게 되었다. 창세기 13장 10절에서 롯이 물이 넉넉하다고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간 것을 보면 물 때문에 많이 다투었던 것으로 보인다. 뭐 굳이 그것이 아니라도 목자가 서로 자신들의 소와 양을 먹이려는 이유가 아니면 싸울 일이 없을 테니 결국은 먹을 것으로 인하여 다툼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그 땅이 그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고 하고 있다. 즉 그 땅이 그들의 먹을 것을 공급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지금 머물고 있는 땅은 애굽에서 다시 돌아왔지만 역시 벧엘과 아이 사이다. 그곳이 아브람과 롯에게 먹을 공급해주기에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람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라는 것이 단순히 육신이나 육축이 먹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정체성의 허전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불러서 나온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이 아니라 벧엘과 황폐함이라는 아이 사이에 있었으니 하나님이 부르신 그 부르심의 뜻이 아브람을 채워주지 못함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신앙의 여정이 그렇다. 신앙이라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으로 수용하는 것인데, 자신의 정체성이 어중간한 자리에 있으면 그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또 교회에 다니면서도 불안하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나 죄에 대하여 그렇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다가 자신의 죄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회개하면 또 나아지고, 그러다 죄 지으면 또 회개하고, 그러다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져도 그나마 그 반복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안식 아닌 자기만족이라도 있다 보니 그곳에 안주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은 자기 땅, 자신의 육신의 삶이 자신을 수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다툼이 있다. 그러면서 마음에 선과 악이 싸운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나지 않는다. 그냥 그러고 사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그래서 더 기도 열심히 하고, 교회에 빠지면 안 되며, 늘 아니 자주 회개해야 한다고 하는 말에 자신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런 자리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브람이 그랬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뭐한다고 아브람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읽고 앉았는가 하는 것이다. 아브람이 자기가 있는 땅이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고 그 땅에서 계속 다툼이 있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오늘 아브람의 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듣는 사람도 자기 땅, 곧 자기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갈등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 아니면 성경 덮고 그냥 애굽으로 가는 것이 장담컨대 더 현명한 것이다.


그래서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땅을 선택하면 롯이 선택하지 않은 땅으로 자신이 가겠다고 하며 롯에게 자기가 갈 땅을 정하라고 한다. 그러자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소알 땅을 선택했다. 소알은 ‘속이 좁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롯은 ‘가리웠다’라는 이름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 앞에서 멸망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패역한 땅이다. 그 땅이 롯이 보기에 좋아 보였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애굽과 같아 보였다는 것이다.


롯이 그 땅이 마음에 들고 그 땅으로 가기로 했다는 것은 그 땅이 자기에게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롯이 애굽과 같은 땅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롯 안에 내용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롯은 또한 아브람의 혈육이라는 것이다. 롯은 아브람의 사촌인데, 어떻게 보면 롯은 아브람이 떠난 본토 친척 아비의 유산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아비의 땅을 떠났는데, 그 아비 형제의 아들이 지금껏 따라 왔으니 몸은 본토 친척 아비의 땅을 떠났지만 아브람의 정체성은 아직 그곳을 다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남은 롯이 이제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롯이 떠남으로 진정으로 아브람이 아비 본토 친척을 떠난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아브람에게서 애굽을 흠모한 본성이 롯이 떠남으로 이제 처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롯이 떠난 사건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신앙 여정도 그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한 개인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그 마음에서 애굽의 법을 사모하는 것이 처리된 것이 아니라, 애굽을 거쳐내고 그 안에서 애굽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좇는 법과 다투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롯과 아브람의 목자들이 다툼과 같이, 또 그래서 롯이 아브람을 떠나는 것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과정이 없으면 아브람이 헤브론에 들어가지 못함과 같이 한 개인의 신앙도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조카 롯이 떠난 아브람,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떠나라고 한 아비의 본성 안에 있던 애굽을 흠모하여 기근이 들면 애굽으로 가던 그 본성이 롯이 떠남으로 아브람에게서 처리되고서야 아브람이 할례를 받고 또한 묻히는 (헤브론에 막벨라 굴이 있음) 땅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제야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가 서 있는 땅을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창 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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