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


이 말씀은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삽시다.’가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수 믿으니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힘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이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의지적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죄를 지으려고 해도 은혜 아래 있으면 그럴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시는 의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말씀은 비단 이 한 구절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의로운 것이고, 모든 죄를 사함 받는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더 이상 죄를 지으려고 해도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줄곧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예 그것이 언제라도 기도를 시작할 때면 먼저 회개부터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순간,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이 되면 그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거나 종교적인 상태 안에 있다가 그렇지 못했던 동안 죄를 지을 수 있기에 기도할 때는 항상 회개부터 하고 시작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가르치고 또 그런 줄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합당한 의문을 가져야…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말씀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으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고, 의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므로 하나가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대로 믿지 않고서 자꾸 이상한 논리를 더해서 늘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 등 이상한 말들을 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고,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까지 하신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거나 믿어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왜 그럴까?’>라고 고민해 봐야 하는데, 그저 인생은 연약하고 육신도 약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성경과 같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시고 있는데, 오늘도 자신을 돌아보면 수많은 죄들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그 상충됨을 인하여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나는 왜 오늘 죄를 지었지?’라고 생각을 하던가, 아니면 ‘내가 사람으로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라든지, 그게 아니면 ‘하나님과 나는 죄에 대한 개념이 다른가?’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나는 왜 오늘 죄를 지었지?’


바울 사도는 뒤 이어 나오는 로마서 8장에서는 죄를 짓는 정도가 아니라 ‘정죄함’ 자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죄의 여부를 떠나 누구도 예수 안에 있는 이에게 죄가 있다고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놀라운 은혜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한 은혜인데, 그 은혜를 알고도 누리지 못하는 자신, 뭔가 그곳에 다다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마냥 연약해서 그렇다고만 하고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죄도 은혜도, 율법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죄, 사람이 생각하는 죄



이렇듯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죄인도 아니고, 죄를 지을 수도 없고, 누구도 정죄할 수조차 없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신앙인들,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있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오늘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헛수고 했구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죄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죄를 지을 수도 정죄함도 없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스스로는 늘 죄가 있다고 여기며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죄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죄에 대한 생각 하나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죄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고,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법이 다르다는 것이고, 법이 다르다는 것은 의가 다르다는 것이며, 의가 다르다는 것은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죄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 다른 두 존재 사이의 관계입니다. 누가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사람도, 죄도, 선과 악도, 법도, 의도, 정체성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 곧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을 지은 하나님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곧 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시는데 사람이 날마다 회개하고 있다면 누구의 시각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것은 당연히 사람이 죄에 대하여 또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 하나님과 다른 그 생각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스스로를 늘 회개하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은 그것을 죄로 여기는 법이 있다는 것인데 바로 그 법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인 스스로나 또 다른 지체를 죄 있다고 여기는 것이야 말로 온전한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바른 견해



그것은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라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다짐도 하지만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육신을 가진 삶이 본질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질로 여기시지 않는 것을 자기가 본질로 여기는 것이야 말로 그 존재에 대한 주관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자기 육신의 삶의 어떠함을 본질로 아는 사람은 ‘어떤 기도를 하는가?’로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서 늘 하나님께 육신의 것을 기도합니다. 그것도 기술이라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도모하는 일들을 도와 주십시오. 이것은 주님의 일입니다.’라고...... 하나님을 속이려 합니다.


반면에 은혜로 아는 이는 자기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기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가지신 목적으로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없던 존재였는데 생명으로 되었다는 것을 은혜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본질로 보지 않습니다. 존재하게 된 목적을 본질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목적, 삶의 목적과 의미가 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육신의 어떠함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온전하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주신 삶에는 당연히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부족한 것 없이 이미 주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지고 주인을 맞은 자동차가 그 주인에게 기름을 넣어달라고 기도할 리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은혜를 아는 이는 사람의 행위와 눈에 보이는 세계가 본질이 아니므로 그 행동으로 인한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죄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떠나는 것, 그것이 유일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목적을 아는 사람, 그 의가 자기 생명이 되고 삶이 되고 행동이 되며 삶의 목적과 의미가 된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으니 도무지 죄를 지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육신으로 실수도 하고, 자기가 사는 세계의 법을 어길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 법에 따라 육신을 드리면 됩니다. 수고하기도 하고, 벌도 받기도 하고, 희생하기도 하며, 또 때론 법의 혜택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죄로 여긴다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할 죄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지금도 죄인으로 정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에서 비롯된 죄에 의하여, 그 행동과 언행이 죄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것을 피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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