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1-16) 하나님의 생각과 심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Date : 2016. 9. 13. 12:47 Writer : 김홍덕

예전에 아파트에 살 때 경비실에 잠깐 근무한 아저씨가 한 분 있었습니다. 그 분은 청소를 아주 열심히 했는데, 문제는 자기가 청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하다 보니 주민들이 때로 청결치 못하게 만들어 놓으면 잔소리와 불만이 많았습니다.(그것 외에는 대체로 친절했음) 그래서 자기가 분리수거를 잘 정리해 놓았는데 보지 않는 사이에 누가 엉뚱한 것을 버려 놓거나 하면 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아저씨는 해고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어이없게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청소했는데 어느 한 부분을 놓쳤는데 그 이유로 해고가 된 것입니다.(물론 청소와 관련하여 때로 욕하기도 한 것이 쌓이기도 했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어떤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은 그 역량과 본성을 하나님의 의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생각할 때 ‘이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그것을 채워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신앙인들에게 있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인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서 어떤 이는 이것이 의로운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성경의 다른 것이 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학교’가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성가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기도’가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성경공부’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의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다투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 사람이 어떤 것을 스스로 의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기준이 죄의 핵심입니다. 그 의를 기준으로 무엇인 선하다, 무엇은 악하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일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고, 그렇게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선악과를 먹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안에 어떤 의를 담아야 하는지에 따라서 사람의 정체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의를 담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그릇에 자기의 의로움, 자기가 가진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을 담는 것에서 신앙과 삶의 모든 타락과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모든 죄가 바로 이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이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자기 기준,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시는 사람이 스스로 가진 의가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이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안에 어떤 기준을 가지지 않고 있다면 애시 당초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 창조주가 만드신 것을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사람의 외모와 그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어떤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이 가진 의(義)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에 대하여 정의를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신학생이 데모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뭔가를 주장한다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더 잔혹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예로 든 경비 아저씨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의로움으로 자신이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이 자기 안에 어떤 의를 가졌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의로움의 세계에 속한 사람, 그 의가 다스리는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행위로는 그 어떤 의도 완벽히 지킬 수 없기에 반드시 자기가 가진 의로움으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다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의로 삼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며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다면 사람을 볼 때 구분이나 판단할 이유나 원인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신 세상을 사는 사람,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을 하나님의 의와 마음으로 보는데 무슨 재주로 그것을 판단하고 심판하며 당을 나누고 구분하겠습니까? 오히려 그럴 수 있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의가 되어 그 의에 의한 안목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구분되고 판단이 되는 것은 오직 사람이 자기 의를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 그것만이 불편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은 그 마음이 육신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같이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는 십자가의 도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노라하며 사람의 외모와, 세상의 기준인 공로와 소유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특히 신앙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비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같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가졌으면 사람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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