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4-32) 상실한 마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Date : 2016. 9. 12. 12:12 Writer : 김홍덕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롬 1:28-29)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 버려두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상실한 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마음이 상실한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주 핵심이라 생각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는 것이 상실한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어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후반부에 해당하는 12장에서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이 말씀과 같은 말씀이라 살 수 있습니다.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사람을 산채로 불태워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삶을 살아서 제물이 하나님께 흠향되듯 그 삶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주 핵심적인 말씀으로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삶이 불의하게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진 모든 죄의 문제가 바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범하는 모든 죄 행위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진 모든 죄의 문제가 바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려 하는 것에 대하여 방치하시듯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삐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이미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하나님입니다. 자기 마음에 이미 세상과 사람을 볼 때 ‘이래야 된다!’라는 분명한 의를 가진 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가진 자기 의의 기준, 그것이 세상에 있는 모든 범죄의 원인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람으로 인하여 시끄러워지는 일은 없습니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사람이나, 자신의 주장을 주장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나 모두 자기 안에 자신의 하나님이 있어서 그 하나님이 가진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것에서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이것이 옳은 것이다!’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시끄럽고, 죄악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세상에 죄도 없고, 잘못된 것도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서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이 아니면 세상은 참 온전하고, 사람은 너무나 온전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한 사람이 부족하거나 죄인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가 죄인이라면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닙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가진 죄의 문제도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범하는 모든 범죄 행위는 그 행위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범죄를 자아내는 마음의 문제, 가치관과 안목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고 말씀하고,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가장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죄는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마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 세상과 사람을 보고 이것이 선하다 저것이 악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그것입니다. 그 마음 하나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만 돌아서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순간, 어떤 삶도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상고해 보면, 우리 사람의 몸이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사람은 질그릇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육신을 가진 형이하학적 모습, 실존하는 이 육신이라는 형식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상태가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고 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사람의 삶과 육신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존재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뜻하신 것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없는 마음은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이고, 그 상실한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가진 선과 악에 대한 자기 의가 자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그렇듯 마음이 상실된 사람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보고 세상을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혈통이 어떠해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혈통에 속해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것에 있어 혈통이 의와 선의 기준이 되어 그 혈통이 아니면 불의하고 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자기가 가진 행함의 기준이 있어 그 행함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의롭거나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신앙적 요소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어떤 것이 갖추어지거나 공로와 행함이 있어야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 그것입니다. 신학을 해야 설교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2장으로 넘어가는 첫머리에 ‘판단하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판단한다는 것은 사람이 가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마음에 있는 사람은 사람을 볼 때, ‘신앙이 없으니 훈계해야겠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도록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육신으로 수고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에 있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은 이미 그 마음에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선악과, 곧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 기준이 사람을 판단하고, 행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라 하며,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죄악의 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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