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8-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Date : 2016. 9. 1. 11:49 Writer : 김홍덕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상당히 왜곡되었습니다. 먼저 여기에 나오는 <의>에 나온 개념에 대하여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 하나는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오류에 대하여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설명함에 있어 제대로 된 것, 온전하고 바른 목표를 소개하는 것이며 충분하고 또 그것이 옳은 설명이겠지만, 오류의 범위가 넓고 너무 상용화되어 있어 이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의로운 사람, 곧 의를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때 이 ‘의’, 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진 의가 어떤 의, 정확히는 누가 볼 때 의로운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 ‘의’는 세상의 관점에서 의롭게 여기는 것에 치우쳐 있습니다. 남을 구하다 죽은 사람을 의사자로 지정할 때 그 의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로움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이 의이며 그 의로움을 가진 사람이 바로 의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구분하고자 하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그러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하다 죽는 것과 같은 것은 의로움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 반문에는 세상의 가치관에서 말하고 있는 의가 전부라는 생각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문에 대한 답은 고린도전서 13장 시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듯, 하나님의 의로움이 아니라면 그것은 세상에서는 어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로움은 세상의 의로움과 무조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동일하게 사람이 사람을 구하다 죽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이 표현되는 삶을 살던 사람이 남을 구하려고 죽는 일과 같은 의로움은 ‘십자가의 도’지만, 그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의롭게 여기는 것이 전부라면 세상에서는 의롭게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행위 자체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어떤 생명으로 살던 사람의 의로움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것에 있어서 의인은 세상의 기준에 의한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의한 의인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그 의로움의 모양이 같거나 비슷하게 보여도 내용상 하나님의 의가 본질이고 그 본질로 인한 의로움이 나타난 사람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의로움이 무엇이냐에 따라 믿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의하여 의인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 가치관이 세상에 속하였으므로 믿음 또한 세상의 것이며 그 세상에 속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모든 것이 결국 세상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으면 세상에서 하는 일이 복을 받고, 세상에서 도모하는 일이나 건강과 같은 것이 나빠지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의로움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두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로움이 하나님의 의로움이라면 그 믿음은 세상의 가치관과 구분될 것입니다. 사람의 삶이나 외모나 그 사업이나 재정적 능력이나 교양이나 고상함과 같은 것으로 사람이 의로운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의로 볼 때 의로운 사람인지를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의 지도자는 예수님의 혈통이나 그 사는 모양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은 보지 않고서 본 예수님의 행동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의로움이란 그런 것이 의로울 때 의로운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과 같이 지금도 사람의 행동거지나 그 삶의 형태가 얼마나 고상한가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의로움의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의로움으로 목사를 청빙하고 장로를 선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로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믿음은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세상에서 하는 일이 순탄하다고 생각하고, 욥의 세 친구와 같이 인생에 곤고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범죄(행위로)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믿음의 목적은 무당에게 부적을 받아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목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육신의 일, 세상에서 도모하는 일의 안위가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것이 의로움이고 그래서 자신은 의인이 되기 때문에 세상의 일에 세상의 법칙과 도리를 뛰어 넘는 기적 같은 축복을 받게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원에 가지 않아도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고, 회사일은 뒷전으로 하고 교회에만 몰입하면 복을 받아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정말로 잘 나타낸 것이 영화 <밀양>에 나오는 유괴 살인범의 태도입니다. 아이를 유괴하여 살인한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어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에 살해된 아이에게 사과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것 같지만 지금 대부분의 큰 교회에 속한 목회자나 신앙인들의 신앙관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가르치고 환호하고 믿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관점으로 사람을 심판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거나, 하나님께 범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생각과 신앙을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로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세상의 경쟁에서 이긴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같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패한 자요, 죄인이요,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하등 가치가 없어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이 의인으로 여기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같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왜 저렇게 바보 같이 사나?’ 싶은 삶을 사는데 그 삶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여기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군사를 불러서 세상의 가치관을 이길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어리석게도 그 세상의 가치관 앞에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임을 당했는데, 그 예수님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깨달아 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같이 세상의 가치관 앞에서 죄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정체성이 바로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보증을 받고, 그 죽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기에 죽은 자 중에 두실 수 없어 살아나신 것이 바로 의인의 삶이고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알아서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이 육신을 가진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소유와 공로를 의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육신의 삶으로 소유와 공로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과 같이 육신을 가진 인생은 세상의 가치관 앞에서 죄인인데 그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이 그것이고, 우리가 육신을 가진 이유가 그것입니다. 육신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심과 같이 우리의 육신을 세상의 가치관 앞에 죄인이 되어 수고함으로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알도록 하는 것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리고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그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생명이 되어 그 생명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그 사람의 삶의 본성이 되어 사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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