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8-17) 신령한 은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Date : 2016. 8. 30. 10:41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보기 원하는 이유가 <신령한 은사(Spiritual gift)>를 나누어 주려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롬 1:11-12)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려고 한다는 것은 바울 사도가 세우지는 않았지만 로마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받고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바울 사도가 굳이 가서 만나고자 한 것은 로마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바울 사도가 기여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믿는 이들에게 그 신앙의 열매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3)


로마서에는 소위 신학이라고 하는 신앙을 학문화하여 연구하는 이들이 크게 관심을 가질만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복음의 심도가 있는 말씀들을 시작함에 앞서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로마로 가고자 하는 것은 그 복음의 심도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바울 사도의 마음에서 우리는 복음이라는 것이 믿는 것에서 시작하여 열매를 맺기까지 일련의 성장(생명이므로)이 있음과 그 성장의 내용이랄까 아니면 비밀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령한 은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정리해 본다면 믿음이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은사가 있고 그것을 로마의 성도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에 로마의 성도들을 직접 만나서 그것을 전함으로 서로의 믿음에 안위함이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받은 믿음의 열매가 맺히는 안위함 곧 평안과 안식을 바울 사도 자신은 그것을 전해야 하는 빚을 진자로서 그 빚을 탕감하므로 누리는 안위함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사의 시작은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다소가 상충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면 복음을 받아 믿기만 하면 되지 그것이 열매가 되기 위하여 신령한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좀 어색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기만 하면 다 되는데 행함이나 다른 것이 왜 필요하냐?’ 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의문들(대표적으로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반문과 같은)이 생기는 근본적인 가치 충돌은 이 믿음의 세계를 <생명의 세계>로 보느냐 아니냐에 딸린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이에 대하여 설명하는 중에 ‘열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열매는 생명 세계의 결과와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신앙의 세계가 생명의 세계가 아니라 공로로 업적을 쌓아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바울 사도는 아마 ‘너희 믿음의 성과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과 같은 표현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믿기만 하면 다 된다는 것에 대하여 오해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고 몸이 주기적으로 교회에 오기만 하면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자동으로 해결하는 시작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믿음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그 아무 것,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그 아무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쉽도록 이를 믿음의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믿음의 행위를 하지 않아도 믿음 그 자체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된다고 믿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이 의로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의문의 열쇠는 그 행함의 정체입니다. 그 행함이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라면 의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없어도 됩니다. 그런 행함은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고 로마서에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행함입니다.


반면에 야고보서에 말씀하고 있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한 것에 나오는 행함은 이와는 다릅니다. 이는 생명이 살아 있으면 그 생명의 본성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행함입니다. 예를 들면 살아 있다면 숨을 쉬고 움직이는 것과 같은 행함입니다. 그러니 그 행함이 없다면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은 생명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행함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만약 신앙생활을 노력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로워질 수 없는 행함입니다. 반대로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믿음의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야고보서에 말씀하고 있는 행함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 사도가 복음의 열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은사에 관한 것들 역시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도 육신으로 그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그 생명을 가진 동안 그 생명이 생명답게 누리고 또 사람으로서 그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평생을 수고합니다. 복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서 잉태되고 그 생명으로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니 그 생명의 열매를 맺는 것은 생명으로서 어쩔 수 없는 본성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그 본성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것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복음으로 받아 들여서 생명으로 잉태되고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에서 그 생명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에 대하여 아는 것이 바로 신령한 은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신령한 은사,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세계와 그 열매에 대하여 전하여 그 내용을 알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기 삶이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것을 보증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거듭난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라는 것을 늘 보증 받고 공증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복음의 비밀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받는 믿음을 가진 이들의 삶이 왜 그리스도의 삶인지를 보증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신령한 것입니다. 영적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 표현된 사람에게 그 영적인 삶이 하나님의 신령한 것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확증될 때에 그것이 온전한 선물인 것입니다. 뭐랄까 마치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았는데 그 안에 그것이 진품이라는 보증서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로마의 성도들이 가진 믿음이 진정한 복음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라서, 유대인이 아니라서 자신들이 믿는 복음이 부끄러워하거나 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확증하고 이로 인하여 서로 안식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취지로 로마서를 써 가고 있다 보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다소 난데없어 보이는 표현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신앙이, 어떤 믿음이 온전한 것인지에 대하여 바울 사도가 어떤 이들의 눈에는 지켜야할 교리와 지식으로 보이는 복음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지식적인 구조와 신학적 관점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나나의 껍질은 노랗다.’고 바나나의 본성을 표현하듯, ‘개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본성을 이야기함과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이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생명의 본성을 말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말씀을 읽고서 ‘이렇게 해야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 안에 무슨 신령한 생명이 있어 그 정체를 몰랐는데 ‘그것이 이것이구나!’ 깨다는 생명의 세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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