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로마의 교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영어로 이 부분은 to belong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서신들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아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리스도의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은 어떤 공간 안에 있거나, 조직 안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당 안에 있다는 것이나,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나 또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의 범주에 속했다는 의미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세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과는 ‘사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고양이는 ‘고양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사과(a apple)는 the Apple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예수 믿는 기독교인을 a (little) christ라고 하고 예수님을 the Christ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라는 정체성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생명 세계 안에서 이름은 생명의 정체성입니다. the Apple은 사과 실물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라는 생명 정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정체성과 동일한 과일, 즉 실존을 우리가 사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정체성을 보이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정체성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속한 실존적인 개체, 즉 말씀이 육신이 된 인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의 정체성이 같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이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또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 집 앞에서 보는 사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과는 전혀 다른 사과(a apple)지만 또 같은 사과(the Apple)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 정체성을 가졌지만 또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그 이름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다양함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생명이 같다는 것, 정체성이 같다는 것은 자기의 이름과 정체성도 그리스도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삶이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진,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모두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생명이라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육신의 삶의 풍성과 세상적인 성공과 복을 받는 것을 위하여 믿는 것이라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주여! 주여!’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해도 다 헛짓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 예수님의 운명과 같다는 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같아진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랬다면 자신도 이룰 수밖에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나도 힘써 노력해 보자’라는 것은 흉내 곧 노릇은 할 수 있어도 생명의 세계가 아닙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 유전자로 인하여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신앙생활이 ‘예수님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생명의 세계가 아닙니다. 생명은 그 생명으로 나기만 하면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정체성은 행위나 공로에 속한 것이 아니니 노력하는 신앙, 신념으로 버티듯 하는 신앙은 더더욱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의 공로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이고 아들이 되려는 모든 믿음은 자기 생각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실상은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신앙입니다. 기도 많이 한 것으로, 성경 많이 본 것으로, 신학을 공부했다는 것으로 신앙의 정체성을 정하거나 옷 입는다는 것은 모두 존재의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유와 공로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존재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면 우리도 그러해야 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의인이신데 세상의 법으로 죄인이 되었을 때에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오늘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의로움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로움으로 죄인이 되고 종이 되어 남을 섬김으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신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소비하는 그런 존재로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삶이라서 한 개의 사과를 보고 사람들이 ‘사과’라고 하듯이 그 삶이 예수님의 생명과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해도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노력>하거나 <힘쓰고 애쓰고 깨어 있자>고 신념을 동원하고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달리 열매입니까? 그 생명 DNA만 있으면 다른 것을 맺으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열매고 생명입니다. 그러니 성령이라는 생명이 자신의 DNA가 되기만 하면 아니 맺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열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을 안다면 노력하는 신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것도 아닙니다.


또한 성경을 읽고서 어떤 말씀이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노력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미완이라는 것입니다. 완성되었다면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그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생명도 날 때 그 생명의 이름을 가지지 않고 살면서 노력으로 그 생명의 이름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사람답게 살려고 하기는 해도 태어나 보니 아직 사람이 덜 되어서 노력해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채우는 이가 없습니다. 생명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그 자체로 온전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나 깨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과는 어떤 짓을 해도 사괍니다. 짓눌려 다 일그러져도 사과고, 반이 갈라져도 사과며, 맛이 없어도 사괍니다. 그리스도의 생명도 그렇습니다. 생명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났다면, 생명으로 났다면, 노력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니 이것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모릅니다. 세상에 그런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것은 동쪽 끝에 가도 여호와가 계시고, 서쪽 끝에 자리를 펴도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어디를 가나 그리스도고, 어떤 행동을 해도 그리스도며, 자기가 아무리 그리스도 아닌 것으로 살려고 해도 성경을 구구절절 지키고 살고 있는 생명인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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