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은 어떤 특정한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어떤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하지만 복음은 모든 사람, 모든 인류,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모든 인생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 바울 사도가 세우지는 않았지만 이방인들이 주축인 로마에 세워진 교회에 보내는 바울 사도의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이방인이라고 구분되어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편견 아래 놓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그런 외침은, 단순히 혈통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었을 때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진 어떤 편견(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의의 기준)에 의하여 원치 않게 다른 계층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없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 당시의 사람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서 어느 한쪽은 복음의 대상이고 어느 한쪽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나, 지금 아니 모든 시대에 있어 사람들이 사람이 가진 어떤 가치 기준에 의하여 ‘저 사람은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어디 그런 경우가 있겠는가?” 싶겠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로 많습니다. 특히 신앙이라는 기준으로 그렇게 사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 사람은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이니 가까이 하면 안 되겠지?’와 같은 생각.


바울 사도가 전하는 이 복음,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이 복음은 어떤 사람이라도 믿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복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복음의 분량이 제한되거나 차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목사라는 신분을 가져야만 교회의 강대상에서 설교할 수 있다는 발상은 ‘복음은 유대인의 것’이라는 생각과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 1:6)

신분이 이방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교회에 속한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행실이 어떠하든, 그 삶의 모양이 어떠하든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만 있으면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 이방인이라도 그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이 어떠하든, 또 신앙의 분량이나 모양이 어떠하든 다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그 표현 방식이 다양합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하나에도 어떤 이는 웃음이 나게 표현하고, 어떤 이는 말하지 않고 참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배고프다고만 하면 될 일을 짜증을 내기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처럼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믿는 삶의 모양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다양성, 즉 풍성하심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방식도 다 다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삶도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함의 어떤 것도 신앙의 자격이나, 신앙의 장성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이방인도 하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혈통으로 복음의 대상이 되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듯, 사람의 어떠함이 복음을 누리는 것에 있어 차별이나 구분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복음에 차별을 두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의의 기준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우리는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선민사상이 가득했습니다. 즉 유대인이라는 것이 상당한 의의 기준이었고, 그 기준에 만족해야만 복음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을 서신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바울 사도는 혈통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입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바울 사도의 그런 행보는 사람이 사람의 기준으로 복음의 대상을 나누고, 신앙의 격을 나누며, 공동체의 울타리를 정하는 선민사상을 넘어서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날 로마서를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로마서는 이방인을 위하여 쓴 서신’이라는 식으로 지식적으로 익힐 것이 아닙니다. 이 로마서를 읽고서 이방인과 헬라인과 유대인에 대한 언급들을 대할 때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정한 어떤 복음의 기준으로 사람을, 또 특히 신앙 안에서 또 공동체 안에서 사람을 나누고 또 다르게 대접하지 않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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