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14-21) 나를 본받으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고린도전서 Date : 2022. 12. 18. 11:57 Writer : 김홍덕

세상 지혜의 속성으로 복음을 가늠하거나 조명하면 복음을 전하는 방식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법을 따른다. 하나님의 모든 법은 생명의 법이라 낳고 낳는 것인 반면 세상 지혜가 전해지는 법은 가르침이다. 물론 복음 안에도 가르치고 양육함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할 때도 하나님 말씀의 생명 본성에 따라야 한다. 생명은 본성이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자녀 같이,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라는 말과 일만 스승이 있으나 아비는 많지 않다는 말에서 복음은 가르치는 게 아니 생명의 법으로 낳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스승과 아비를 대비시키고, 부끄러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권면하는 것이라는 표현 역시 궤를 같이 한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빠져버린 세상 지혜와 복음은 전혀 다른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전한 복음은 생명의 법이다. 사람들은 무심하나 구원의 본질인 거듭남도 생명에 관한 말이다. 이 생명의 법은 그 어떤 교육 방식보다 완벽하다. 교육이란 가르침을 통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변화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더 성장하는 자체 동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다시 나서 교육을 통해 이르고자 하는 모습이 본성이 되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기 때문이다. 본성이 바뀌면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다. 그러니 이보다 온전한 교육은 없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성도들을 스승으로 가르치지 않고 낳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친 대로 살도록 지속적인 훈계를 하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로 나는 것에 비할 수 없다. 거듭나면 말씀으로 가르치고자 한 모든 게 자기 본성이 되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은 이런 생명의 법이기 스승이 아닌 아비처럼 낳았다고 한 것이다.

 

또한 자신을 본 받으라는 말도 같은 맥락과 법이다. 자녀가 부모를 닮고 자기도 모르게 부모처럼 살게 되는 건 가르쳐서가 아니라 낳았기 때문이다. 이 법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이나 바울 사도 자신을 본 받으라는 건 행동이나 습관이나 말투를 따라 하라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거듭나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그리스도의 모든 본성이 자기 본성이 된다.

 

자신이 전한 복음이 생각나도록 디모데를 보낸다는 건 아들은 아버지를 알게 하는 생명의 법을 염두에 둔 말이다. 아들은 누구라도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과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심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이 생명인 복음은 가르쳐 전해지는 게 아니다. 이건 엄연히 생명이므로 생명의 법이 이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구원은 거듭남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와 오늘날 교회가 매몰된 세상 지혜는 이와 다르다. 세상 지혜로 평가하고 판단하여 비교 우위에 있는 사람이 가르친다. 또 비교 우위에 있다는 걸 서로 주장하니 분열된다. 이 모든 게 고린도 교회와 오늘 우리가 아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말씀으로 권면한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능력은 거듭나게 하는 능력이다. 가르치는 말과 달리 그리스도라는 생명 본성으로 살게 하는 능력,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이다. 기독교인들이 빠져 있는 평소 성경을 지켜 행하려 그 지키는 법을 말로 배우는 어리석음과 다른 세계다.

 

이 다름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다름이 아니다. 돌과 풀의 차이다. 생명 세계와 사물의 차이다. 말로 가르치는 세상 지혜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리스도라로 거듭나서 살게 하는 능력도 이런 차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전한 복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이렇듯 배우고 훈련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것이다. 놀라운 생명의 능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