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은, 육신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란 말씀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또한 고린도전서를 관통하는 세상 지혜에 대한 권면의 일환이다. 결국 세상 지혜를 좇는 것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는 게 자신을 속이는 것이란 뜻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위한 존재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란 말씀이 이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냥 거하시기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건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면서 하나가 되어 형상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겠다는 말씀이다. 이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며 이는 곧 피조물인 사람의 존재 목적이다.

 

사람의 존재 목적을 외면하는 게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

 

어떤 존재라도 자신의 존재 목적을 스스로 부인하는 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람도 역시 그렇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한 존재 목적 아닌 것을 추구하는 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게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관통하는 주제인 세상의 지혜를 좇고, 세상의 지혜를 가치의 기준으로 삼아 세상과 신앙을 조명하는 게 바로 자기를 속이는 것이란 게 바울 사도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를 사모하는 건 자신을 속이는 것

 

바울 사도가 이토록 세상 지혜를 경계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도와 반대로 높아지는 것을 의로 여기고 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 지혜는 세상에서 더 높아지는 법이고 지혜다. 높고 크고 많은 것이 곧 의인 세상 가치 기준이 그렇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가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낮고 천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가 사람을 구원하는 진정한 가치이자 사람의 존재 목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정체성임을 보이셨다.

 

따라서 사람이 낮아지는 십자가의 도와 반대인 세상의 지혜를 좇아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는 모든 시도와 근본 마음은 자기 존재 목적을 부인하는 것이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란 게 바울 사도의 말씀이다. 가야할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라고 하고, 또 그렇게 가는 건 분명 속이는 일이다.

 

그런데 이같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일은 이색적이거나 일상에서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 신앙인들은 남도 자신도 속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스스로 속이고 있다. 신앙인으로서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다. 바울 사도 말씀의 의도로 볼 땐 분명히 그렇다.

 

신앙인들이 정말로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지점이 여기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을 의지해서 어디로 가려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서 얻거나 이루거나 이르려는 자리가 어딘지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아 높은 곳이라면 스스로 속이는 사람이다.

 

분야가 굳이 돈이나 권력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도덕이나 행위의 선함 역시 다르지 않다. 높아지려는 육신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이 정한 인생의 목적을 버린 삶이다. 즉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세상 지혜를 의지하므로 분열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한 이유가 이것이다. 오늘날 신앙인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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