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를 어린아이 같이 대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을 긁는 말일 수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스스로를 신령한 사람이라 여기는 교만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어린 아이와 같다고 일갈했다. 이유는 육에 속한 사람이란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당을 짓고 자신이 속한 당에 바울, 아볼로, 게바와 같은 사도의 이름을 붙였다. 바울 사도는 이런 현상을 세상의 지식으로 신앙을 조명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육에 속한 상태라고 정의했다. 바울, 아볼로, 게바(베드로)와 같은 사도의 성향을 따라 당을 이룬 것을 그 증거로 삼았다. 그리스도파는 아마도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의 모임이었을 것이다.

 

분열하고 당을 이루는 이유는 사실 복잡하지 않다. 단 하나다. 너는 그르고 나는 옳다는 생각이 원인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같은 이들이 모여 당을 짓고 자신들의 생각과 비슷한 사도를 도용해 자신들의 생각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게 분열의 통일된 생리다.

 

사실 오늘날 세례의 형식을 두고 갈라진 교회도 이와 같다. 또 다른 이유로 교파가 갈라지는 것도 같다. 교회가 둘 이상으로 갈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사람 간에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당을 이루고 분열한다. 이건 사실 선악과의 문제인데 그건 다른 곳에서 많이 다루었다. 분명한 건 사도들은 그 누구도 여하의 이유로 분열을 원치 않았다. 육에 속한 사람들로 인해 졸지에 분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분당은 하나의 이슈일 수 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이것이 고린도 교회가 가진 모든 문제의 뿌리에서 비롯된 증거로 본다. 그 뿌리는 육에 속한 생각, 세상의 지혜라고 정의하고 책망한다. 뒤이어 언급하는 간음이나 스스로 섰다고 여기는 교만이나 우상의 제물과 같은 모든 문제는 이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나 아볼로나 모든 사도는 하나님의 동역자며 말씀을 듣는 이들은 밭과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씨를 뿌리는 자나 물을 주는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말한다. 결국 씨 안에 있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이건 자신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형상이고 본질이자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의미다. 더 간략하게 표현하면 자신은 형식이고 복음이 내용이란 의미다.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도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형상으로 본다는 건 신령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형상이고, 표현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존재로 만드는 건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이걸 볼 수 있다는 건 자신이 그런 사람이란 의미다.

 

사도에 대한 인식 = 자기 정체성

 

사람이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형상으로 보려면 자기 안에 표현할 하나님의 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신의 노력으로 그 의를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만 가지를 지키다 한 가지만 어기면 모든 것을 어긴 게 된다. 하지만 생명이라면 된다.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본성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어길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사도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고 분당을 일삼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육에 속한 사람이며 신령한 것으로 먹이지 않았다고 한 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사람이 아니란 말씀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 육신의 평안과 성공을 기도하는 오늘날 신앙인 역시 스스로는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나 육에 속한 사람이다. 그들은 성경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본성으로 하는 게 아니다. 본성으로 하는 게 아니란 건 생명이 아니란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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