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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해라고 하는 태양은 이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 있어서 빛의 근원이다. 이른바 광원(光原)인데, 그렇다고 태양이 빛 자체인 것은 아니다. 빛을 내는 물체, 다시 말해서 빛이 형상화된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같이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빛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것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것을 인식하게 하고, 그 정체에 대하여 바로 깨닫게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가진 삶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마치 태양이 빛을 내듯이 말이다.


하나님께서 궁창 위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빛을 내는 존재들에 대한 예표이다. 해와 같이 그 빛을 스스로 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그 빛을 반사 시키는 이도 있고, 또 이런 유관성은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는 별과 같이, 하나님의 밝음은 없는 곳에서 나름의 빛을 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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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말씀은 5일째에 들어서서 바다 속의 생명과 공중의 새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 아주 중요한 관점이다. 필자도 이것에 대하여는 제법 깊이 있게 다루어 보았었다. 왜냐하면 바다는 세상이라고 했는데, 이 안에 있는 생명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중이라는 것은 좌표와 근거가 불분명한 생명 곧 무당과 같이 신접한 생명들을 말씀하심인데 이것 역시 복을 주셨다는 것 역시 그들의 왕성함도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매우 용납하기 힘든 명제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세상을 배척하고, 세상은 마귀의 손 아래 있는 것이라 늘 경계하고 전쟁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사는 것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과정 속에서도 이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바리새인들을 악하다고 보신 관점과도 연관이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는 기독교 신앙이 두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형식과 내용에 관한 것으로 기독교가 형식을 갖추어 내용에 이르려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악과에 대한 그른 해석이라고 했다. 선악과에 대한 바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이 다섯 째날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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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과정 속에서 3일째에 창조하신 식물들은 자연의 산과 들 그리고 사람이 경작하는 논과 밭에 나는 식물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그림자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표현되는지와 또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상관성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과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 땅(사람)이 혼도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시작은 빛을 만나서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이 세상이 보이는 것이 본질이 아님을 알게되고, 그러한 깨달음 자신으로 하여금 어떤 말씀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 먹을 수 있는 것은 궁창 위의 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세상의 지식과 학문과 쾌락에 속한 것이나 예의나 고상함에 관한 것으로 사람을 정의하거나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에서 떠나게 되는데 이것을 종교적인 의식으로는 세례로 표현되고, 그리고 천지창조 과정에서는 땅이 바다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창조의 과정이 땅에 것에 집중이 된다. 땅이 무엇을 내며, 이 땅을 비추는 광명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이 땅에는 어떤 동물들이 있으며, 그리고 이 땅은 결국 무엇이 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그 결국은 <사람>이 창조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것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삼을 수 없는 땅이 하나님의 생기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는 것이 창조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오자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이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존재를 성경은 <그리스도>라고 하신다. 고로 이 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어디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을 것인지의 과정을 지나 하나님이 안식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삶이 되는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무엇을 어디에 둔다는 것은 두는 것과 장소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모든 것이 그렇다.


이 과정 안에서 네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것이다. 이 광명은 하나님께서 다 궁창 위에 두셨다. 무엇을 어디에 둔다는 것은 그것과 그 있는 위치가 합당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비슷하게 보여도 행주는 주방에 두고 걸레는 화장실에 둔다. 걸레는 화장실과 격과 정체성이 일치하고 행주는 주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궁창 위에 두셨다는 것은, 궁창 위의 물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태양과 지구의 위성인 달과 우주에 있는 수많은 행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그 빛,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하게 하는 빛을 주관하는 광명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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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셋째 날 이후에는 사람의 먹거리로 주신 식물들에 관한 것과 또한 각종 동물들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이런 모든 것은 다 생명이다. 다시 이야기해서 가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공되지 않았다는 것은 억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이나 삶이라는 것이 금욕적이고 성경을 규범과 법칙처럼 지켜내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천지창조에 나오는 각종 식물과 동물의 창조 과정과 그들에 대한 말씀을 하신 의도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식물이라는 것은 사람의 먹거리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먹었다는 것은 그 섭취한 것이 다시는 분리할 수 없는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은 '그것을 먹는 존재가 무엇이냐'와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내내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표현하고 계심을 본다면, 씨 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먹는 것과 먹는 존재는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은 것이 몸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씨앗 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그 씨가 몸과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고, 또한 씨와 몸이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이것에 대하여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씨앗 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을 말씀하심이며, 그렇게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를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나오는 식물의 이야기는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시면서 먼저 식물류를 만들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사람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창조의 과정이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인 것이다.


그리고 이 씨 있는 식물과 없는 것,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은 씨앗을 가진 생명의 장성함에 관한 것임을 이미 포스트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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