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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1절) 생명의 말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8. 16. 09:07 Writer : 김홍덕

생명의 말씀



사도 요한은 요한 1서를 시작하면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이라고 했다. <생명의 말씀>이 태초부터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생명의 말씀>이 있어 시작된 태초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


어떤 세계든 입문하는 시점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시작>이라 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 눈을 떠는 시점이 있는데 그것을 성경에서는 <태초>라고 한다.


물론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지구라는 행성을 포함한 우주와 세계를 만드신 것은 신앙의 근간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나님 믿는 신앙의 세계가 그 사람에게 시작이 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태초는 하나님의 세계가 한 사람 안에서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것을 내재한 말씀이다. 요한 사도에게 그런 시작이 있었는데, 바로 <생명의 말씀>을 만나면서부터 라는 의미가 바로 1장 1절의 말씀이다.


이 <생명의 말씀>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가 말하고 있는 <태초>는 적어도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점이 태초였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그것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점이 바로 <태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점이 바로 <태초>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신이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도 요한은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라고 했다.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만난 이 생명의 말씀은 요한에게 있어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했다는 것이 바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전하고자 한 것이 그것이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태초가 열린 것과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엑셀이라는 프로그램은 어지간한 사람들은 알지만 그것으로 업무나 학습에 세계를 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특히 기독교를 종교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잘 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요한 사도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할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만난 사람도 수없이 많은 시점일 때 기록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요한 사도가 볼 때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조차도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된 세계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성경을 기록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태초를 온전히 경험하고 누리는 삶에 대한 바른 만남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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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1절) 세계의 시작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8. 14. 14:22 Writer : 김홍덕

세계의 시작


요한 사도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에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본 바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이 어떻게 태초부터 함께 있었다고 하는 것일까?


요한이 지금 보면 아무리 옛날 사람이라도, 육신으로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과 함께 있어서 그것을 보고 만졌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우리가 이 요한1서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이 시작의 말씀부터 분명하게 알고 가야 한다. 요한 사도가 말하는 <태초>는 언제인지, 또한 그 태초부터 있었다는 <생명의 말씀>은 무엇이며, 그것을 만지고 보았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성경을 시작하는 책인 <창세기>에서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시작하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태초라고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했고,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라고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사도행전에서 “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누가복음)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시부터……”라고 했다.


사도요한에게 태초는 생명의 말씀이 함께하면서부터 자신에게 시작된 세계이며, 마가는 복음의 세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으며, 누가는 예수께서 가르치시기 시작하는 것이 자신이 그렇게 복음의 편지를 보내는 삶을 시작하게 된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바울 사도도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고 시작한다. 즉 로마서를 시작하는 바울의 마음이라는 것이 예수께서 부르시면서부터 라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사도들에게 있어 어떤 세계가 시작되는 시점이 있는데, 모두 하나 같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라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그것을 <태초>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도들도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모든 사도들의 삶의 시작의 공통점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기록되었고 오늘 우리가 읽는 것이다. 즉 오늘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세계의 시작이다. 그 시작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으로 해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세계의 태초가 열리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 시작에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보았고, 들었고 자세히 보고 만졌다는 것이다. 요한 1서 1장 1절의 시작부분은 바로 그런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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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한 것



창세기, 요한복음, 요한 1서 이 세권의 성경의 시작은 "태초"라는 말로 시작이 된다. 이 태초라는 것은 물리적인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겠지만, 한 개인의 신앙 안에서 본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세계가 시작되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요한 1서는 요한 사도가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영지주의에 대하여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요일 4장)라 정리하면서 심도 있는 경계를 다루고 있다.


그렇듯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신앙에 있어 핵심적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태초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것 역시 육신이 수용할 수 있는 범주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세상을 만드시는 능력을 핵심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 태초라는 것이 육신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가 더 중요한 점이라는 관점을 가진 요한 사도의 편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감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요한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일 수 있다.


그러니까 요한 사도는 요한 1서를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있어서 예수님의 무엇을 믿는 것일까? 물 위를 걸으셨을 정도로 초인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죄는 우리가 범하고 벌은 예수님이 받았다는 대속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체성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죽고 나면 영혼을 천국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인지.


하지만 요한 사도가 믿었고, 또 전하고자 했던 것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 그것이었다. 그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하면, 우리 인생들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한 1서를 시작하면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바라"고 기록하고 있다.


생명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는 듣고 보고 특히 손으로 만졌다는 것은 모두 육신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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