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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이라는 것은 어떤 법조문이나 행동 강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 있다고 하는 생명의 근원이고 본성을 말하는 것이고,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생명이 그 유전적 본성에 순종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마음에는 없는데, 죽어서 천국가기 위하여, 혹은 벌 받는 것이 두려워 억지로 마음에 부담을 안은 채로 꾸역꾸역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지금의 말로 한다면 DNA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께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그 생명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살아 있다고 인정하시는 사람의 정체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이고, 히브리적인 표현으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이를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말로 표현하면 어쩌면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당시에 왕이요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신분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것은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는 해방자요 구원자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그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 죄는 존재의 죄이다. 존재가 잘못되면 뭘 해도 안 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면 왜 살아가는지를 모른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의 어두움과 혼돈이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존재의 목적을 이탈한 것이다. 그러한 중에는 마치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인데, 그런 어두움과 죄에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 메시야인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것이고, 또 그것을 보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있다 하는 생명이 그것이고 또한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 생명, 곧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살아가는 그 생명의 본성과 DNA가 바로 계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마음에 동의되지 않는데,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니 억지로 자신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그 지키는 자는 아버지를 안는 줄로 안다고 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집 주변에 사는 도둑고양이 틈새에 새끼 고양이가 보이면 사람들은 그 어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어미도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새끼 고양이가 있는 것을 보고 어미 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그 목적인 그리스도의 품성을 가지고 사는 생명에 순종하는 삶이라면, 그 생명을 보면 당연히 그 생명을 주신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명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행동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목적인 육신과 한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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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이야기 하지만 군복을 입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라서 군복을 입는 것이다. 성경을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그냥 살다보면 성경의 말씀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성경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안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해서 야구의 타자가 왜 잘 쳐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또한 군인이 연습하는 것이 연습한 내용을 실전에서 준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팀이 이기고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임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약에 나오는 말씀들도 지켜 행하려고 한다. '기도는 호흡'이라고 하면서 믿는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한다(have to)고 이야기 한다. 호흡은 하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면 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의 본분이나 자격 요건이 아니라, 본능이고 본성인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음식을 앞에 놓고 머리 숙여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고 성도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 앞에 왜 기도하는가? 그게 단순하게 한 끼 일용할 양식에 감하는 행동으로서 성도의 기준이 되는 것인가?


진정한 식사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음식 앞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목적하신 존재의 목적과 의가 자기 안에 있어, 그 의를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 감사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표현이 그것일 것이다.


계명은 그런 것이다. 계명의 모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모양과 삶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생명이 그 안에 자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문제이다. "내가 누구냐?"하는 것이 정해지면 그것에 맞게 사는 것이고, 그 사는 모양이 어떠한지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응하실 것이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세상 사라들이 알 것이다"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즉 성경의 모든 말씀은 결과이지 원인이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의 결과며, 어떤 것의 형식이며, 어떤 생명의 표현인가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이고, 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이 또한 순종을 낳는다. 사람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사람이라는 DNA에게 순종한다.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이것이다. 이것은 실패도 없다. 사람으로 난 사람이 사람의 유전자로 사는 것에 실패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성경의 어떤 것도 못 지킬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성경을 온전히 지키기 힘든 것으로 보는 것은 주신 목적을 모르는 이유 때문이지, 사람이 무능하거나, 이 육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에 한계가 있거나 욕망이 죄스러워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난 사람들에게 성경은 자신의 일기나 자서전과 같은 것으로 읽힐 것이다. 이가 아니라면 아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율법도 마찬가지다. 그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지만, 지키라고 한 이유가 있다. 지키면 천국에 들어 간다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 하다보면 사람이 가진 한계로는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즉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공을 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팀이 이기기하기 위하여 공을 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 일을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결국 예수님으로 인하여 안식하는 것이 주신 목적이지, 안식일 날 일하지 말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든 자가 안식일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안식하게 되었다면 안식일을 주신 목적이 달성 된 것이다.


이것을 모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 모든 성경이 원하는 목적, 곧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삶을 사는 것 그것이지, 하나하나의 말씀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command(사령부, 머리)에 obey(순종)한다는 것이다.(요한 1서 2장 NIV 성경) 이것은 행동을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몸이 순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의>를 이루는 것이 그것이고, 본능과 생명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을 모르는 신앙생활은 다 율법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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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는 단순하게 보면 '기도하라'했으면 기도하고, 안식일을 지키라'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스포츠의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전투는 이기고 전쟁은 진다.> 혹은 <전투는 지고 전쟁은 이겼다.> 같은 표현들이다. 경기 자체는 너무 화려하고 또한 훈련한대로 했지만 정작 경기는 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와 같은 경우는 실제로 많이 있다.


동네 축구를 해 보면 그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동네 축구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공을 몰고 골을 넣으려는 욕심으로 게임을 한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기에 그렇게 한다고 이겨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는 경우가 많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어떨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 한 팀에서 부문별 1등을 한 선수가 많이 있는 팀 보다 부문별 1등하는 선수는 별로 없지만 팀플레이가 잘되는 팀이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타격으로 치면 선수들은 훈련을 하는 이유가 실전 경기에서 공을 잘 쳐서 살아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타자에게 주어진 계명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계명이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팀이 이기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팀이 이기는 것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자신이 잘 치는 타자가 되는 것이지, 잘 치는 타자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계명들도 이와 같다. 성경을 단순한 행위 규범으로 보면, 성경의 문장 하나하나를 지켜 행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율법이 대표적인 것이다. 하지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으면 그냥 성경은 도덕책 같은 단순한 행위 규범이 된다.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신약 구약이 따로 없다. 다 행위 규범이다.


옛날이야기 중에 게으른 세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가 죽게 되었을 때 게으른 아들을 걱정하여 집 앞에 있는 밭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거짓 유언을 하고 죽는다. 그러자 아들들은 앞 다투어 밭을 파헤치지만 기대한 보물은 없고, 그렇게 밭을 개간하여 농사짓는 삶이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계명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말씀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지켜야할 행동들은 행동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는 생명의 표현들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무엇에 관한 말씀인가 하면 단 하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매뉴얼이고 계명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명의 본질이요 가장 큰 정체성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이 표현된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행동으로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지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모습과 규례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은 신약이 아닐 요한 계시록도 율법이 된다. 이것은 자명한 것이다. 성경을 지키면 하나님의 아들이,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관점으로 보면 오늘도 내일도 늘 성경을 지켜 행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은 모든 성경을 유대인들의 율법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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