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2652

남자와 여자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9. 13. 13:13 Writer : 김홍덕

결혼이라는 형식이 가진 내용



하나님께서 영이시므로 형체가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를 보면 교회를 기독교를 생각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영광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처음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모습이고, 구원 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게 만드신 사람을 보시고 이어 하신 말씀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상태로만 있어서는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하나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영으로만 계시지 않고 세상을 만드셨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용만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이것을 좀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 사람이 신앙만 있고 현실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좋지 못하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 곧 아담의 배필로 그의 갈비뼈를 가지고 하와를 만드셨다. 이것은 남자 곧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의 의를 표현하였다는 의미이다. 즉 여자는 남자가 가진 의를 표현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은 의가 형식이 되는 것, 즉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한 예표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것은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라는 정체성과 표현에 능한 여자라는 정체성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 즉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결혼으로 얻은 아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성(性)씨를 아버지의 것을 따르는 것이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여자의 성마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의를 세상과 사람으로 표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한 것이 어쩌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를 가진 희미한 증거라고 할 수 도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문화란 결국 사람의 의식 안에서 나온 것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필종부(女必從夫)와 같은 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육신의 남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형식은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의미나 말이라면 옳은 것이다.


그렇지만 방금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결혼에 대한 것은 육신으로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육신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결혼이라는 인생사를 내용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 남자의 의와 명분이 여자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 결혼이라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가지신 어떤 생각과 의가 결혼이라는 삶의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내용과 형식이라는 것이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한 것이 결혼이라면 결국 사람은 그 관계를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즉 결혼이라는 인생사를 보면서 혈통의 정체성을 남자의 성으로 대변하는 것과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명분을 중시하고 여자는 자신을 꾸미는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사람이라는 형식과 그 사람이라는 형식의 내용이자 존재 목적이자 창조하신 이유를 가지신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즉 결혼하면 혈통의 정체성이 남자의 것을 따르듯이 사람의 정체성도 사람이 어떤 모양, 어떤 생각, 어떤 가치관으로 살더라도 결국은, 아니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 하나님의 의를 삶의 내용과 목적으로 삼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장가를 들겠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이고, 사람을 여자와 같이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용과 의가 되시고, 사람은 그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주제별 성경 보기 > 내용과 형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와 여자 (5)  (0) 2015.09.17
남자와 여자 (4)  (0) 2015.09.14
남자와 여자 (2)  (0) 2015.09.12
남자와 여자 (1)  (0) 2015.09.11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  (0) 2015.09.10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남자와 여자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9. 12. 15:55 Writer : 김홍덕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을 보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이 사람은 아담이다. 아담이라는 이름의 뜻이 ‘붉다’는 의미이다. 이는 흙이 붉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붉은 색은 사람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다. 하여튼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대상은 아담인데, 이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그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남자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남자를 보고 사람이라고 한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남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존재를 남자라고 하는 것이다. 즉 내용을 가진 이가 바로 남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은 내용만 있어서는 좋지 못하니 그 내용을 표현할 형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를 말씀하시는 것이 육신으로 남자냐 여자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육신이 여자라도 남자의 격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고, 육신이 남자고 힘이 좋고 세상을 좌지우지 할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없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여자의 격을 가진 존재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람의 수를 셀 때 남자의 수만 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만을 사람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인 사람만 살아 있다고 보신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율법의 조문으로만 보면 여자를 수에 세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되지 않고 그 의 자체로만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인 것이다. 즉 내용이 내용으로만 있고 표현되지 못한다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내용은 형식으로 표현될 때 보기에 좋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만들고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형태를 가진 존재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이라 인정하는 내용을 가진 사람이 내용만 가진 상태로 있는 것은 좋지 못하므로, 그것을 표현할 배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형식이고, 그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여자인 사람으로 나타난 것이다.


실재로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사람인데, 그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정체성은 남자는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여자는 표현된 것과 방법과 형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내용인 영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람을 만드시는 성품이자 법을 가지고 계시고, 그 성품과 법으로 내용에 대응하는 사람을 남자로, 또 형식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육신으로 남자와 여자의 행동 양식도 이런 것을 설명하는데, 여자는 화장을 하고 겉을 꾸미며, 옷과 같이 표현되는 것에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남자는 겉으로 표현되는 것 보다 자기 안에 능력을 갖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남자의 본성은 평소에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것이 어떤 상황과 필요할 때 나타나고, 여자는 보통 평소의 모습마저 늘 꾸미고 단정하게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남자와 여자의 육신의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것이 어떤 관계인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은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지, 천지창조의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가 형식을 아는 여자와 함께 하지 못하고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의요 내용이신 하나님 자신이 혼자 있는 것 좋지 못하므로 이를 표현할 존재,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어 그것을 표현할 형식이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분이심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본성이 천지와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의의 본체고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할 형식을 창조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표현할 형식을 만드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이며, 의의 본체이시고 영이신 하나님이 표현된 형식이 바로 세상과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형체가 없으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온전한 내용이고, 의이시며, 목적이신 분이시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가지신 본성이 그 의를 표현할 형식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것을 성경에서 나타나신바 된 것이라고도 하고, 말미암은 것이라고도 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끌리고 서로를 그렇게 간절하게 필요로 하고 짝을 찾는 이유가 그런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 본성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표현하고 거하실 형체가 필요했다는 것은 내용과 형식은 언제나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지라기보다 하나님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그래서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육신을 어떻게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자가 가진 의가 여자로 표현되는 것이나 여자가 가진 표현의 본성을 채울 의를 찾는 것이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되는 것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창조섭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하와를 또한 창조하실 때에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다고 하셨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남자의 갈비뼈가 여자보다 하나 작은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성경에서 뼈는 <의(義)>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다른 죄수와는 다르게 뼈가 꺾이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의는 꺾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담의 의가 하와로 나타났다, 즉 남자의 의가 여자로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내용이 형식으로 표현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다는 것은,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

즉, <“영이신 하나님께서 천지로 표현되셨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상은 하나님이라는 내용이 표현된 형식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은 남자와 여자라는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을 통하여 표현하신 것이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의 본성인 것이다.


(계속)


'주제별 성경 보기 > 내용과 형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와 여자 (4)  (0) 2015.09.14
남자와 여자 (3)  (0) 2015.09.13
남자와 여자 (1)  (0) 2015.09.11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  (0) 2015.09.10
<내용과 형식>이라는 주제에 들어가며…  (0) 2015.09.08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남자와 여자 (1)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9. 11. 16:18 Writer : 김홍덕

성경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는 육신으로 남자와 여자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에 관한 것은 철학적, 사회적 관점이나 유머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말들이 있고, 견해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다는 것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남자와 여자를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 안에도 여러 가지 다른 견해, 그리고 논쟁과 의문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왜 아버지인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렇다면 어미니 하나님도 있지 않겠느냐?’며 어머니 하나님을 신앙한다거나 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성경 안에서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남녀평등이라는 과제 아닌 과제 역시 논쟁일 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남자 아니면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나에게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녀가 평등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쳐도. ‘어떻게 하는 것이 평등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안에서 남자를 더 높이는 성향을 가진 사람은 보수적인 사람으로, 반대로 여권의 신장을 이야기하면 진보적인 사람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사실 성경은 엄격한 <남존여비>적인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시절까지도 여자는 사람 수에도 들지 않았다. 성경에 나오는 인원수는 대부분 장성한 남자의 수를 말하는 것이고, 여자와 아이는 수에도 포함하지 않는다. 군바리는 사람에 치지 않는다는 농담 같은 일이 실제로 그때는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슬람이나 유대교에서는 일부 이런 관점이 그대로 있어서, 서구 사회에서 볼 때 여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신앙이나 관점이 언뜻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을 <남존여비>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쓰여 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용은 보지 못하고 형식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어머니 하나님>과 같은 관점 역시 그렇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심청전을 보면서 심청전이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면 딸을 바다에 수장 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심청전을 읽고서 딸을 수장 시키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것이 소설이라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심청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효(孝)>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보기 때문이다.


심청전을 읽고서 그 내용이 효라고 생각하는 것을 문학적인 표현으로 <행간>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품의 문자를 본질로 보지 않고 작가가 전하고자 한 내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이 시대적인 것으로 보면, TV나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화면 속의 장면이 본질이라고 생각해서 장면을 따라하는 것과 같은 것을 누구나 어리석은 짓이라 여기는 것은 TV나 영화의 본질은 화면 자체가 아니라 작가나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경도 그와 같은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아주 이상하게 된다. 성경을 볼 때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행간을 읽듯이 보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십자가를 만들어서 지고 다녀야 하고, 생리하는 여자는 부정하니 부정하게 여겨야하니, 이게 뭐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렇네!’ 싶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지키는 것에 있어서 행간을 읽듯 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보는지 말로하기도 힘들 정도라는 것을 알면 아마 놀랄 것이다.(하지만 그것에 놀라는 사람은 성경 말씀의 본질을 알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이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성경에서 남자를 우대하고 여자는 숫자로도 세지 않았던 것은 육신의 남자는 귀하고 육신으로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이 절대로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성경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성경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지킬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말씀이 육신으로 남자, 여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지 않는 관점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는 것은 육신으로 남자와 여자는 어떤 것을 표현한 형식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계속)


'주제별 성경 보기 > 내용과 형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와 여자 (4)  (0) 2015.09.14
남자와 여자 (3)  (0) 2015.09.13
남자와 여자 (2)  (0) 2015.09.12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  (0) 2015.09.10
<내용과 형식>이라는 주제에 들어가며…  (0) 2015.09.08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