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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3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4, 4)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3가지 시험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 마가복음에는 2절에 예수님이 시험 받으셨다는 사실 기록 정도만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에 대해서는 이미 블로그 마태복음과 < 교회는 모르는 주기도문>이란 책을 통해 상세히 설명한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마가복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16장으로 구성된 마가복음이 8 후반부터 예수님이 어떤 그리스도인지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할 예정이다. 알고 보면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도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자 시험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 돌로 떡을 만드는 것
  •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는 것(그리스도면 죽지 않을 것)
  •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마귀에게 절하라는 것,

이렇게 세가지다.

 

시험은 세가지지만 사실상 한가지 시험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말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시험은 예수님만 받으신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험은 율법으로 없다는 고백, 진정한 물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받는 시험이다.

 

먼저 순서대로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을 살펴보자. 많은 설교자들이 40일간 금식으로 허기진 예수님에 대한 말초적인 시험이라고도 말한다. 도대체 신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말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육신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시험이다. 시험의 목적을 알고서 봐야 한다.

 

모든 생명은 자기 육신과 삶에 수용될 있음이 전제하에 무언가를 먹는다. 율법의 상징인 돌을 먹는다는 것은 율법이 양식이고, 율법을 지키면서 있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내는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 마귀의 시험이다.

 

그리고 율법은 신약 구약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신다는 생각과 믿음이다. 따라서 오늘날 신앙인들이 찰떡 같이 믿는 성경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성경을 지키면 흉한 일을 면할 있다고 믿는 신앙, 바로 그것이 돌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에겐 흉한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더욱이 그런 막연한 기대 같은 믿음이 바로 마귀의 유혹이란 것을 꿈에도 생각치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믿음이 하나님의 아들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죽거나 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험을 이기지 못한 증거다. 그런데 심지어 마귀가 유혹하기 전에 이미 사람들 신앙의 뼈대가 되어 있다.

 

성경을 정말로 바로 봤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말했다는 이유로 가장 극형인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흉한 일을 면하는 부적으로서 전혀 쓸모 없다는 것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예수 믿으니까, 교회 다니니까, 기도하고 있으니까, 십일조 냈으니까육신으로 도모하는 일들이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사람의 그런 기대나 믿음이 바로 마귀의 시험이다. 심각한 것은 이것을 구분조차 못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마귀는 대고 코를 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시험을 숭배한다. 예수 믿으니, 교회에 다니니, 구원을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 아들인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흉한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좋은 믿음으로 여긴다. 그리고 믿음이 자신을 세상에서 이긴 자로 만들 것이라 믿는다. 예수 믿으면,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내면 사업 잘되고 삶이 평안하고 형통해 지리라 믿는다.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은 본질은 이와 같다. 더욱이 시험은 성령에 이끌려 받으신 시험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는 시험이고, 진정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누구나 이기는 시험이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같이 성경을 행함으로 지켜 의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란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거나 육신의 삶이 남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으로 잉태케,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기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시험으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으면 믿지 않는 사람과 구별되는 삶을 것이라 믿는다. 오히려 육신의 삶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위험과 환난을 면하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 아니라 육신을 초월하는 삶을 얻기 위해 육신으로 지켜낼 없는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도 지킬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우리는 노력할 이라 변명한다. 무덤과 같이 생명 없는 신앙에 겸손을 회칠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모습을 진정한 신앙이라 여긴다. 시험을 이기기는 커녕 오히려 시험의 내용을 참신앙이라 숭배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의 가치로 높은 곳에 있는 육신의 평안과 성공을 주신다고 믿는다. 그것이 마귀가 주는 시험을 오히려 신앙이라 여기는 것이기에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율법으로 없다는 진정한 고백이 있는 사람, 성령이 생명으로 거듭나게 사람에게 임하는 시험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삶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시작된 사람의 모습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육신의 삶이 남달라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이다. 그래서 시험은 성령이 이끌었다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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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9-11) 성령이 비둘기 같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1. 31. 09:29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 기적 같은 일은 성령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게 한다. 성령께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 받는 광야로 몰아냈다고 하시는 말씀 역시 그렇다.

 

어떻게 보면 팀킬 같고 모순 같은 이런 말씀은 신학 같은 공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이다. 심령에 성령이 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을 받았다면 세례 받는 예수님께 임하고, 한편으론 시험에 몰고 다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이질적인 모습이 이해될 수밖에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의 일을 모를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람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기를 바라심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 그리스도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의 일이다. 성령이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임을 증거한다. 이런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과 구원은 성령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작은 우리가 율법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고백, 세례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이것을 보여 주심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것은 율법으로 없다는 세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스도가 보여주시는 것이다. 마치 훌륭한 선수시절을 보낸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보여주고자 하심의 핵심이 성령이 임하시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고, 세례를 받으시니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니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하여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성령이 오시는지 보여준다. 바로 세례다. 율법으로 없다는 , 행위로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고백할 성령이 오신다. 성령은 존재의 하나님 여호와의 영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이 분명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신앙, 세례를 받지 않은 신앙이지만 다들 모습이 같으니 그것을 모른다. 성경을 육신의 행함으로 지켜내려는 신앙, 예수를 믿으니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책임이나 신념의 신앙, 하나님께 행여 받을까 두려워서, 혹은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십일조하고, 예배 참석하고, 조심하고, 속에는 화가 나는데 예수 믿으니 참자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례에 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성령이 임하지 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반대로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율법으로는 없고 의로워질 없다는 고백의 세례에 임하므로 성령이 임한 사람은 성경대로 살지 않으려 해도 어쩔 없이 성경대로 사는 자신을 발견한다. 거듭난 <생명>이기에 당연하다. 생명의 본성은 거스를 없다. 성령으로 잉태된 그리스도의 본성은 감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겐 세례와 함께 마귀의 시험이 있다. 둘은 사실 같은 맥락이다. 행함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고백이나 율법의 상징인 돌을 먹거리, 자기 삶이 것이라는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 임한 성령이 시험 받는 광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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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069(5:18-21) 우상을 멀리하라(마지막회)

Category : 카테고리 없음 Date : 2022. 1. 30. 22:14 Writer : 김홍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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