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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16-26) 성령의 열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8. 25. 14:43 Writer : 김홍덕

성령의 열매는 익히 알려져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렇게 9가지다. 종류가 열거되어 있다 보니 사람들은 이것을 각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열매인 과일을 생각해보면 하나의 과일 안에 여러 가지 맛이 함께 있다. 성령의 열매도 그와 같다.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 성령의 9가지 열매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 사도가 성령의 열매를 육체의 일과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열매는 생명의 소산이다. 생명이 있다면 그 본성 요즘 말로 DNA에 따라 맺어지는 소산이 열매다. 즉 노력이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신앙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고 오해다. 성령의 열매는 절대로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이제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니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는 설교나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열매는 결과물이나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비유한 것처럼 사과 하나에도 신맛과 단맛 등이 공존한다. 열매란 이런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보여주는 다양한 선함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표현할 존재로 창조했기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무궁한 성품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령의 열매를 다양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꼭 9가지로 한정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이 9가지를 구분해가면서 맺으려 노력하는 것은 완전히 코미디에 불과하다.

 

앞서 육체의 일은 주체도 육체고 소득도 육체가 얻고, 열매는 생명 본성이 주체고 그 소득도 열매 자체가 누리지 않는다고 설명했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표현하시려 창조한 피조물이기에 사람으로 표현되는 성령의 열매의 주체는 하나님의 의와 뜻이고, 그 열매를 보고 하나님의 의와 뜻을 발견하는 사람이 열매를 누리고 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열매를 누린다. 참고로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의와 뜻과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

 

성령의 열매 9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아니 하나님의 선하심의 일면들이다. 이것은 굳이 개별적으로 생각할 이유가 없다. 성령도,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라는 성품도 모두 생명이기 때문이다. 즉 생명으로 나기만 하면 9가지든 9만 가지든 상관없이 다 열매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생명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바로 생명이다. 열매는 생명의 소산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다른 걸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성령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당연히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자기 삶에 이 9가지 열매가 늘 있음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누군가의 설교를 듣거나 이 말씀을 보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그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육신으로 의로워지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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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하기 전 먼저 육체의 일을 열거했다. 누구라도 죄로 여기는 일들을 육체의 일이라 명시했다. 그러나 정말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열매>라는 단어다. 열매는 전적으로 생명의 속성,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는 일이고, 성령은 열매라고 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은 반대다. 하지만 이는 서로 대칭적인 반대라기보다 “0” 아니면 “1”이라는 개념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그리고 둘은 병립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표현대로 열매와 일은 근원적으로 다른 개체이자 개념이므로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다. 이것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인정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사실 대부분 신앙인은 무의식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면서 육체의 일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그렇고, 생명이 있으면 자연히 열리는 열매를 맺으려 노력하는 신앙이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념도 틀렸고 가능하지도 않다. 성령으로 나서 살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열린다. 그게 열매다.

 

육체의 일은 주체도 일이고 이익도 육신이 얻는다. 반면에 열매는 본성이 주체고 열매 자체가 얻는 이익은 없다. 육체의 일은 결국 육체의 욕심을 이룬다. 음행으로 얻는 쾌락을 육신이 느끼고, 육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화를 낸다. 말 그대로 썩어질 육체가 행하고 육체가 결과를 얻거나 미치는 건 모두 육체의 일이다. 하나님께 구한다고 해도 육신의 평안과 복락을 구하는 건 육체의 일이란 의미다. 물론 육체의 일을 구하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은 자아 밖에 계신 성령을 따라가는 것이나, 자아 밖에 계신 성령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갈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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