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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13-15) 율법의 완성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8. 13. 11:08 Writer : 김홍덕

지금까지 율법은 범법자를 위한 것이라는 것과 믿음이 오기 전까지의 세월이라는 것 그리고 종의 신앙인 것을 이야기해 왔다. 물론 이와 같은 율법에 대한 설명은 모든 사람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한 설명이다. 본질적인 목적은 믿음이 사람을 의롭게 하므로 모든 이들에게 믿음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율법의 완성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면 율법도 그 존재의 의미와 목적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이를 위하여 자유를 설명했다. 이 자유는 율법이 의무감으로 사람을 종으로 삼기 때문이다. 행동해야 의롭게 된다는 것은 행함이라는 의무를 부여한다. 의롭게 된다는 목적이 사람을 종으로 삼는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도하는 것’, ‘성경 읽는 것’, ‘교회에 봉사하는 것도 분명히 행동이라는 것과 분명히 그 행위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있을 뿐 아니라 기대하는 보상은 행위 없이 안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므로 종의 신앙이자 율법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절대로 간과하면 안 된다.

 

바울 사도는 율법적인 압박이 없는 자유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불렀다고 하신다. 율법이 믿음이 오기 전, 약속 이전의 세월이므로 율법 다음에 오는 믿음이 곧 자유다. 그리고 이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건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졌다는 의미다. 그리스도로 났으므로 그리스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 그리스도의 본성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이끈 본성이다. 종노릇의 본인 십자가.

 

그리고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는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랑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자리가 십자가다.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에 의하여 죄인이 되신 자리가 십자가다. 의인이 스스로 죄인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어 죄인이 되었으니 자유로 종이 된 표본이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 사랑으로 인하여 거듭나는 게 그리스도로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리스도로 나야만 예수님께서 자유로 종이 되신 것 같은 본성을 가진다. 이것 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사랑으로 종노릇한다는 건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은 가진 자유로 종노릇하는 유일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율법의 완성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성경의 지식이나 학문으로 성경을 대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구원으로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이 가장 큰 사랑이다. 그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표현되었다. 이 모든 게 죄에서 우리의 구원하기 위함이다. 죄는 자리 곧 존재의 목적을 벗어난 것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으로 사람인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존재의 의미가 회복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본질은 존재의 의미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에게는 존재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께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곧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 사람의 존재 의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 스스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람에게 늘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고, 사람은 그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기에 사람의 존재 이유와 의미는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람에게 알게 하시려고 언제나 성실히 일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그 사랑에 화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된다. 그게 아버지와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 가진 사람으로 표현되면 그게 아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그리고 그 표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 그것이 바로 종과 같이 섬기며 서로 사랑으로 존재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종이 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한다. 종은 할 수 없다. 율법은 의무감으로 하지만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스스로 종이 된다. 바로 이 자리로 이끄는 것이 몽학선생인 율법이다. 율법의 존재 목적이 범법자를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므로 사람이 거듭나서 서로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 종과 같이 섬기면 율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본성을 인하여 스스로 종과 같이 섬기는 자가 되면 그 사람의 세계에 율법은 완성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바울 사도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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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를 받아야 의로워진다는 미혹 앞에 흔들리는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인이므로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한다. 만약 밥을 얻기 위한 의무감으로 행동하는 종과 같이 의로워지려는 목적으로 성경이나 율법의 계명을 지켜내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경고한다. 그리스도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종과 같이 되라고 한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한다. 방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인이니 종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권면하고 바로 이어서 스스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문맥으로 보면 이상한 반전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것은 너무 당연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그리스도는 생명의 이름, 곧 정체성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의 본이다. 그래서 the Christ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자신의 본성이 된 사람도 그리스도(a christ). 무엇보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간 본성이 그리스도다. 이 그리스도의 본성을 안다면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이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본성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이 안 해도 되는 것을 행하라는 권면이 아니라 거듭나므로 얻은 새 생명의 본성임을 안다. 그리스도로 났으니 자신의 모든 본성과 삶과 행동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밖에 없다.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더 명확해진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피조물들이 스스로 정한 하나님 아들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할 때 자신을 내어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질 이유도 책임도 없고, 세상의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운 분이신데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자신을 낮추어 종과 같이 서로 섬길 뿐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로움에 매몰되어 나에게 그 의를 주장하고 나를 구속하려 할 때 자신을 내어주는 본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이것이 정상이다. 아니 유일한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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