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6장)
사무엘 상 26장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쫓는 마지막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울이 3,000명의 군사와 함께 자기를 추격한다는 소문을 탐정을 보내어 확인한 다윗은 사울이 자고 있는 진으로 들어간다. 이건 사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왕이 친정을 나왔고, 군사가 3,000이나 되는데 왕이 잡으려는 주적이 왕이 자고 있는 진까지 들키지 않고 들어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건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윗은 (누이의 아들) 조카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침소까지 침범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울을 헤치지 않고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와서는 큰 소리로 사울과 그의 군대 장관 아브넬에게 자기 일을 알리게 되고, 이를 들은 사울은 다윗에게 더 이상 추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간다. 이번에도 다윗의 논리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사람이 헤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논리로 보면 자기 목숨을 헤치려는 원수를 죽이는 건 정당방위 정도 될 텐데 다윗은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앞선 몇 개의 글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이라고 정의했었다. 당시 기름을 부은 지위는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 정도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름 부을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지위나 신분으로 보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지만 결국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 인생으로 나게 하시고 삶을 살게 하셨으므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존재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존재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과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된 육신이란 형식을 가진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표현하는 존재가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존재이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존재다. 그리고 기름 부은 자를 일컫는 말이 바로 <그리스도>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목적으로 창조된 존재, 그리스도가 되기 위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기름을 붓는다는 게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람을 프로그램된 기계처럼 마냥 하나님의 뜻만 행하는 존재가 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정한 그 뜻을 사람이 순종해야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된다. 사울은 이에 불순종한 상태를, 다윗은 이에 순종한 사람의 마음을 투사한다. 둘 다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순종과 불순종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우리 각 사람은 존재 자체로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 분순종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려야 하는 각 사람의 삶이라는 나라와 세계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목적이라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자기가 좋다는 것을 살아가는 불순종하는 옛사람 사울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과 맞서는 다윗과 같은 새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건 세상 모든 사람의 상태다. 결국 세상 사람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뜻이란 기름 부음을 받았고, 그 안에 사울과 다윗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도 부지불식 중에 선지자를 대접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신앙인에게 특히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건 신앙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이다. 그릇되어 보이는 사람이 행여 신앙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신앙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일갈하는 나쁜 습성이 신앙인들에게 있다. 뭔가 잘못되고 불행한 일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벌을 받는 것이며, 그 저주를 벗어나려면 교회에 다녀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한다. 이건 교회 안에서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 기기도 하는데 이건 다윗이 사울을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그런 생각으로는 이스라엘 곧 자기 삶과 자기 세계를 하나님의 의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므로 자기가 심판할 수 없다는 온전한 믿음을 보여 주었다. 이게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난 새사람이 보여줘야 하는 긍휼과 믿음의 본성이다. 다윗이 사울을 헤치지 않음으로 왕위에 오르듯이 우리도 이런 긍휼한 마음과 믿음이 있어야 나의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모두가 소망하는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믿지 않는 사람을 멀리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무너뜨려야 하나님을 믿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가치관과 그들이 보낸 군사들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게 아니다. 이건 여러 선택 중에 하나의 옵션으로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는 언뜻 물리쳐야 할 것 같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주장에 나를 내어주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다. 우리는 그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나는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이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계속 도망만 다녔던 건 이 그리스도의 본성을 인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하나님에 관하여 그릇되게 말하고 전하는 사람, 불순종하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사람을 강제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다윗과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나그네의 외투 벗기는 내기를 한 태양과 바람의 이야기에서 바람은 강하게 불면 사람의 외투를 벗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람이 강할수록 사람은 옷깃을 여몄다. 반면에 태양이 따뜻하게 비추니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 이게 우리가 사람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방법이고, 불순종을 버리게 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었더니 사울이 더 이상은 다윗을 쫓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대할 때, 또 우리 안에 있는 그 본성을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공격적으로 대하고 죽이려 들지 않는 게 좋다. 그건 사울을 죽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불순종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고 인생을 준 사람이고,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의 모습들도 사도 바울처럼 주권이 바뀌면 주를 위해 사용될 본성들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행하는 존재가 되면 나의 삶이라는 또 하나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리게 된다.
'평교인의 성경 보기 >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 상) 33. 옛사람과 새사람 갈등에 임하는 하나님의 대 원리 (0) | 2025.10.08 |
---|---|
(사무엘 상) 32.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의는 명분보다는 긍휼 (0) | 2025.10.07 |
(사무엘 상) 31. 구원받은 자의 본성과 하나님의 의를 아는 인간의 양심 (0) | 2025.10.06 |
(사무엘 상) 30. 세상의 일로 옛사람을 제어하시는 하나님 (0) | 2025.10.05 |
(사무엘 상) 29. 옛사람과의 갈등, 결국 세상 가치관과의 싸움이다 (0) | 2025.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