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5장)
사무엘이 죽었다.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가 죽었다는 건 이제 왕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큰 선지자인 사무엘의 죽음을 단 한 절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무엘의 죽음을 기록한 25장 1절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선언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의 입장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다윗의 마음이 확인되고 사무엘의 시대가 저물었다. 사무엘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왕의 시대는 어떤 의가 주관하는 지를 알려주는 전환이다.
사무엘이 죽은 이후 처음 나오는 사건은 나발이라는 사람과 다윗과의 일이다. 직접적인 기술은 없지만, 나발 수하에 있던 소년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에게 하는 말에서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광야에 있을 때에 나발을 보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다윗이 나발의 잔치에 자기 수하 소년들을 보내어 음식을 청하는 말 속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의 청을 거절했다. 성경은 그를 불량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원래 그의 아내였던 아비가엘이 다윗에게 구원을 청하러 갔을 때도 자기 남편을 그렇게 말했고, 아비가엘에게 다윗을 거절한 남편이자 자기 주인의 일을 구한 소년조차도 나발을 불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종합적으로 그는 은혜를 모르는 불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것은 다윗의 소년들이 나발의 잔치에서 먹을 것을 구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나발의 말이다. 그는 다윗을 가리켜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 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라며 다윗을 모욕했다. 다윗을 주인을 떠나 도망간 종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 말은 들은 다윗은 군사를 데리고 나발을 치러 나섰다. 다윗이 나선 것은 단지 은혜를 모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울을 피해 쫓기는 자기를 한낱 주인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종으로 여긴 것이 다윗의 화를 더 돋우었다. 이는 골리앗을 말에 분노했을 때와 결을 같이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인하여 쫓기고 있고,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이기에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임에도 사울을 살려준 믿음에 대한 모욕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불량하다고 간주하시는 지도 알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도리를 어기는 건 하나님께서 핵심으로 보시는 불량함이 아니다. 그렇게 치면 유다를 유혹한 다말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계보에 들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을 모욕하고 업신여기는 사람을 불량하게 보신다. 그리고 우리 내면의 일로 보면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로 자기 삶을 주관하려는 사람의 일을 모욕하는 게 하나님이 보실 때 불량한 일이다.
다윗이 크게 진노하여 나발을 치러 올라갈 때에 남편 나발이 다윗의 소년들에게 행한 일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은 200인분의 떡과 양 다섯과 곡식들을 가지고 다윗을 마중한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구원을 청한다. 이런 아비가엘에 대해 성경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다윗의 아비가엘의 청을 듣고 나발을 멸하러 가기를 멈춘다.
아비가엘은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조차 왕이 될 것이라고 고백한 다윗을 모독한 남편 나발과 달리 다윗이 왕이 될 것을 믿었다. 다윗에게 구원을 청하는 이유로, “주(다윗)가 왕이 되었을 때에 무고한 피를 흘렸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라고 설득한 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우리 심령 안에서 새사람이 옛사람을 이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이 있어도 불순종하는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면 안 된다.
특히 아비가엘은 불량한 자기 남편을 죽이는 일은 나중에 무고한 피를 흘린 과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사울을 죽이지 않은 마음을 다윗에게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다윗은 아비가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이라고 화답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기획된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그 생명을 해하는 건 결국 다윗에게 과오가 될 것이라는 걸 상기시킴으로 자기도 구하고 불량하지만 남편도 구하고 또 다윗도 구한다.
이 나발의 일은 24, 25, 26장을 관통하는 하나님 섭리의 단면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종이 볼 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이다. 24장과 26장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2번 얻지만 그때마다 그는 사울을 살려준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사람을 사람인 자기가 심판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었다는 건 좁은 의미로 보면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셨다는 의미로 한정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 있다는 의미로 보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성경의 여러 말씀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 긍휼과 자비로 대하고, 그들의 무지함에 대해 나를 희생하는 자세를 취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다른 것 볼 거 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셔서 그렇게 기도하셨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기도만 알아도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을 임으로 심판하고 책망할 게 아니다.
우리는 앞서 사울을 죽일 기회를 얻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며 옷자락만 자르고도 그마저 마음에 찔려 한 다윗의 마음이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인이며,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으므로 사람이 함부로 대하거나 터부시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는 걸 이야기했었다.
아비가엘의 불량한 남편 나발을 죽이는 건 그 당시의 관습이나 정의로 충분한 명분이 있는 일이었지만, 다윗은 그것을 말리는 아비가엘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이 보내신 일로 받았다. 이 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내 안에 있는 모든 본성들은 우리가 함부로 배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야 함을 교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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