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4)

사울은 다시 다윗을 쫓는다. 다윗은 이를 피해 동굴로 피했는데 마침 사울이 발을 가리러(용변을 보러, 개역 한글판 기준) 동굴에 들어갔는데 다윗의 일당이 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다윗을 권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자른 뒤 돌아선다. 그리고 다윗은 굴을 떠나는 사울을 향해 외친다. “내 주 왕이여!”라고 그리고는 자기가 자른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주며 어찌하여 사람들이 나를 죽이라는 말을 들으시느냐?”라고.

 

다윗은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었다. 혼자 용변 보러 온 한 사람을 여럿이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므로 자기가 헤칠 수 없다며 사울을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옷자락 자른 일조차 양심에 찔려 했다.

 

사울도 마냥 악하지만 않았다. 그는 다윗의 목소리를 듣고 이것이 내 아들 다윗의 목소리냐?”라며 울며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화답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임을 알고, 네 나라가 굳건해 질것임도 안다라고 고백한다. 그건 분명 사울의 진심이었다.

 

우리는 이 사건은 다윗이 사울을 용서한 일로 여기고, 또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선대해야 하는 근거로 삼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목회자라는 신분이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이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 있다. (근거가 없다고 한 것은 이 블로그의 여러 곳에서 목사의 정체성에서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사람은 자기 옛사람을 비롯하여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설명하고, 모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의에 다르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걸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름을 부은 존재다.

 

많은 신앙인이 믿지 않는 사람을 터부시 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건 너무나 보편화된 신앙인의 집단 지성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실수를 범한다는 건 그 사람이 온전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본성은 믿지 않는 사람, 자기를 헤치려는 사람을 저주하거나 터부시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자기를 잡으러 군병들을 하늘의 군사를 불러 역사적인 교훈이 되도록 물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걸 세상이 다 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자기 옛사람이나 세상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신앙이 어리석은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건 그리스도로 거듭난 지를 가늠하는 아주 결정적인 증거다.

 

신앙인들인 신앙이 없는 사람을 터부시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건 정말로 엄연한 사실이다. 이건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신앙적인 잘못이나 부진을 대할 때 사회보다 엄격하다. 물론 따끔한 경고가 필요한 상황도 있지만 언제나 권면이 먼저다. 무엇보다 강한 권면과 훈계는 스스로 깨닫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말로 지적질 하는 건 아주 초보적이고 말하는 사람의 편의적인다. 그건 십자가에 달려 사람들에게 구원을 깨닫게 하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상반된 그릇된 모습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사울의 말을 주목해야 한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은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창조한 각 사람의 삶의 세계를 주관하는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이다. 그런데 옛사람을 대변하는 사울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는 걸 진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옛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나의 삶을 주관하게 될 것이며, 그 세계가 굳건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양심인데, 이 양심이 작동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양심에 화인 맞았다는 말씀(딤전 4:2)은 사울이 보여주듯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걸 알지만 그걸 순종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으니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가 되겠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의가 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과 그것이 인생을 굳건히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고 겨우 옷자락 조금을 잘랐지만 그것조차 마음에 찔려한 다윗의 모습은 우리가 신앙의 유무를 떠나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보여주신 자기를 희생하는 그리스도라는 존재의 본성으로 거듭났다는 사람이라면 이게 본성이 되어야 한다. 이것만큼 확실한 구원의 증거도 별로 없다. 신앙을 빌미로 사람을 터부시하는 신앙적 집단 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사울의 고백에서 보듯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의가 삶의 세계, 각자의 나라와 인생을 다스리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 내면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굳건해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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