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3:1-5)

사울이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인데 사람들이 블레셋이 쳐들어와 이스라엘 유다 지파의 땅 그일라(요새’, ‘피난처’)에 쳐 들어와 타작마당을 빼앗았다는 것을 전한다. 구원을 청한 것이다. 그러나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으로서는 전쟁에 나서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하시므로 가서 블레셋을 물리친다.

 

그러나 도망자가 큰 전투를 일으켰으니 추격하는 사울은 당연히 이를 알게 되고 이로써 둘의 관계는 더 멀어지게 된다. 사울은 다윗이 이방인을 이길 정도의 전투 세력이라는 걸 확인했고,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생각과 악한 신에게 사로 잡힌 사울로서는 내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적 행동으로 다윗을 추격한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이 내 안에 있는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이라면, 블레셋은 완전히 다른 갈등이다. 완전히 하나님과 무관한 이방과의 전투다. 세상 가치와의 싸움이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해도 이를 이유로 세상의 가치와 결탁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 준다. 블레셋은 이 시대 어느 나라 혹은 어느 민족의 계보라고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성경, 특히 사사기에서 초대 왕국 기간 동안 이방을 대표하는 민족이다. 즉 우리 신앙의 주적인 세상의 가치를 대변한다.

 

예수를 대충 믿고,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는 습관을 구원의 증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바로 믿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내적인 갈등,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은 엄청나게 곤고한 싸움이다. 신앙의 여정이 사람마다 달라서 달력의 기간으로 가늠할 때 각 여정을 소화하는 시간들은 유니크하다. 그렇지만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옛사람과 새사람의 내적 갈등은 많이 길고,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힘들다. 다른 거 볼 것 없이 로마서 7, 8장을 관통하는 바울 사도의 간증만 봐도 그렇다.

 

신앙인 대부분은 경험했다고 말하기 힘든 그 힘든 여정은 경험하고 이제는 다스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은 누구나 그 시간 동안 세상 가치관을 이겨내는 것이 아주 힘들다는 걸 체휼한다.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처럼 율법과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세상이 보기에 낮아지는 본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순종하는 과정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아 세상에서 잘 살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사는 이들은 꿈에서도 겪지 못하는 힘든 과정을 겪는다.

 

그 시간들 동안은 세상의 일은 상관도 하기 싫을 정도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블레셋이고 나발이고 세상의 가치관과 다투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블레셋을 물리쳐야 하며, 또한 이기게 하신다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 왜냐하면 결국 블레셋이나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자기 생각으로 불순종하는 사울이나 모두 공중 권세에 사로잡힌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인 동맹인 셈이다.

 

세상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블레셋이나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이나 가치 기준은 같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 사람들 생각에 옛사람이라는 게 화내고 욕하고 음란한 생각과 돈을 위하여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을 희생하는 마음 같은 것 같지만, 실상은 빳빳한 신권으로 헌금하는 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가치관이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낮아지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반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진 인생이 표현해 주기 바라시는 마음이 바로 그렇게 낮고 겸손한 마음인데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과 귀하다고 하는 것과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게 바로 사울과 같은 옛사람이다. 비싼 파이프 오르간으로 예배 드리면 하나님께서 <(more)> 기뻐하실 것이라는 마음을 사울이 대변하고 있다.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은 블레셋과 같은 기준으로 좋은 것을 정하여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울의 계보다. 블레셋과 같은 가치관이다. 따라서 사울에게 쫓기는 건 결국 블레셋 곧 이방과의 싸움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 있는 다윗에게 블레셋을 치러 가라고 하시고, 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하신 이유다. 이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의고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신앙적인 내적 갈등은 결국 세상 가치관과의 싸움이다. 좀 더 고상하게 예수 믿고 싶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예수를 믿고 싶어한다. 예를 들면 공무원처럼 휴일 분명한 직업을 가지고 교회가 하자는 일에 잘 참석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알고 보면 우리가 겪는 신앙적 갈등은 예수를 더 잘 믿고 싶으니 더 나은 환경이면 어떨까 하는 욕심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그건 결국 세상과의 싸움이다. 이방인과 세상의 가치를 낮아지는 십자가의 본성과 접목하려는 마음이 내적 신앙 갈등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더 좋은 것으로, 더 평안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섬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상황을 추구하고 욕심내는 마음이 우리 옛사람의 실체다. 결국 세상 가치관과의 싸움이다. 이는 분리할 수 없다는 걸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다. 교회에 다니는 걸 구원의 증거로 여기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옛사람과 사력을 다해 싸우는 신앙 갈등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건 비밀 같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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