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장)
지금 이어가고 있는 사무엘 상하 속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의 영적 세계, 우리 자아라는 나라의 통치에 관한 전개라는 기본 위에서 전개하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인생의 왕이다. 다윗은 우리 자아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이다. 성경은 우리 각 사람 인생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에 관한 말씀이라는 분명한 사실이자 진리다. 성경은 이렇게 오늘 나를 향한 말씀이고, 나를 위한 말씀으로 볼 때 나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내 육신의 삶의 본성이 된다.
다시 한번 정리하는 다윗의 삶의 의미
다윗의 이야기에서 다윗의 행동은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 일어나는 일들의 모형이자 푯대다. 다윗의 일은 그리스도의 혈통, 곧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가진 삶에 관한 말씀이다. 다윗의 행동이 아니라, 다윗의 삶은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가진 거듭난 사람의 삶에 어떤 일이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게 본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떤 일(행동)을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단순한 스토리로 다윗을 조명하면 안 된다.
다윗의 어떤 <행동>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행동인지를 살피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성(혈통)은 어떤 삶을 사는 지를 보는 게 바른 관점이다.
만약 다윗의 행동을 연구하여 그것을 본받아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 한다면 그 신앙은 성경을 역방향으로 보는 관점은 단순한 오류 이상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잘못 믿는 신앙 정체성이다.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 지>를 다윗을 통해 알려 하는 건 신앙의 초점이 육신의 평안과 복락에 맞춰져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혈통인 다윗의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 지를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거듭난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이다. 일반적 신앙 관점과 반대 방향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 옛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던 사울이 죽었다는 건 우리 신앙의 영적 과정에 있어 이제는 옛사람과의 갈등을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새사람, 거듭난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의 삶은 옛사람이라는 첫번째 아담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듭난 두번째 아담으로서 사는 삶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건 아마도 흔한 접근 방식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충성스런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오히려 그 부하를 죽음으로 이끈 다윗의 행동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건 분명히 쉽게 동의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거듭나면 그래도 된다는 거냐?’라는 도전은 좀 미루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사무엘 상하는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의 시편을 통해 전하는 다윗의 삶은 단순히 하나님께 복을 받고 왕으로서 성공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시려는 의도로 기록된 게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생명인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그리스도라는 본성으로 사는 삶은 어떤 지를 우리에게 전하시는 말씀이다. 생명과 본성으로 설명된다는 건 행동으로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명백한 계시다.
그러므로 다윗과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내가 그리스도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조명한다. 따라서 다윗은 내 인생이라는 나라와 세계를 주관하는 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철로를 벗어나서 다윗을 조명하는 건 성경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이 어색한 접근을 잘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접근이 우리가 거듭나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짓는 죄의 문제와 삶의 여러 유혹과 갈등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길고 긴 다윗의 이야기는 바로 이것에 관한 말씀이다.
새사람으로 거듭난 삶의 시작을 알리는 다윗의 왕위 등극
사울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윗은 하나님께 어디로 갈 지를 묻는다. ‘유다의 한 성으로 올라 갈까요?’라는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헤브론으로 가라고 명하셨고 거기서 다윗은 유다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일부지만 왕으로 통치를 시작한다. 이는 옛사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우리 삶의 일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기 시작한 우리 모습을 설명한다.
다윗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었다. 그가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각 개인의 영성으로 점점 자라는 것에 비할 수 있고, 사실 그걸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옛사람의 유산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주관하는 거듭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건 말 그대로 거듭난 생명이라 갓난 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때로 쉽게 이 신앙의 여정을 쉽게 월반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수님께서도 30살이 될 때 까지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육신의 삶을 사셨고, 모세는 애굽에서 40년, 광야에서 목자로 40년 총 80년을 보냈으며,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3년을 그리고 사무엘 상하에 나오는 다윗은 사무엘이 기름 부은 후 30살에 왕위에 오르기까지 13~15년 정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 마저도 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도 아니었다. 즉 거듭났다고 우리 삶의 모두를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은 여정이 있고, 생명은 시기에 따라 경험과 함께 자라야 올바르게 장성할 수 있다.
옛사람을 이기고 거듭났다고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심령 안에서 일어나는 옛사람과 새사람의 지독한 갈등을 설명하는 사울과의 치열한 전쟁을 이긴 다윗은 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았다. 정치 현실에선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거듭남이라는 생명이 바뀌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로 들을 때는 생명으로 거듭나는 순간 모든 게 바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어쩌면 슬픈 단면을 보여주며 다윗의 왕국은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건 행위로 의로워지는 신앙 여정과는 구분된다. 옛사람과 싸움과도 구분된다. 이건 그리스도의 장성함으로 자라는 과정에 관한 말씀이다. 다윗이 그 많은 실수와 심지어 범죄에도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이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책망을 듣는 불순종의 옛사람과 다투는 게 자아는 없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다윗이 삶을 통해 보여준 여러 모습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 사무엘 하에 기록된 다윗의 이야기는 그리스도라는 생명 본성이 삶을 주관해 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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