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자리를 떠난 것

 

여기서 우리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질문을 정말로 깊이 살펴야 한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 “내가 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먹었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하신 건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 질문은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기 바라신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 자기 의로움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책망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목적의 자리 곧 정체성이 있는데 그걸 벗어난 상태는 모두 사망과 죄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레 죄의 원어가 왜 자리를 벗어나다라는 말, 하마르티아(Hamartia)인지를 알 수 있다.

 

늘 예로 들듯이 휴대폰지 전화가 안 되거나, 자동차가 이동이라는 목적을 제공하지 않거나, 전구가 밝음을 제공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걸 죽었다라고 한다. 의도한 목적을 상실한 존재는 모두 죽은 것이다. 성경이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었다고 하고 죄와 사망에 있다고 하신 건 모두가 자기 의를 추구하는 선악과를 먹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스스로 선을 판단하는 저의 지금 모습이 너의 자리인지를 물으신 것이다.

 

죄는 존재의 목적을 벗어난 <상태>

 

결국 죄는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상태다. 이는 모든 존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이다. 특히나 사람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는 유일한 존재다.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건 인식하나 왜 존재하는 지는 모르는 게 사람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은 피조물은 스스로 그 존재하는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창조주이신 하나님만 아신다. 은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걸 도우신 도움이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에게 그걸 알게 하셨으니 은혜다.

 

그러므로 죄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다. 존재가 존재 목적과 의도를 벗어나면 제 아무리 훌륭한 행동을 해도 하는 족족 모두 죄가 된다. 부엌에서 요리에 사용되어야 할 식칼이 용도를 벗어나 사람을 헤치는 자리로 간다면 칼이 잘 들면 잘 들수록 죄가 되는 것과 같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면 그의 모든 삶은 의롭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의로움을 추구하고 구현하며 산다면 그 결과가 세상을 이롭게 해도 그는 하나님 앞에 죄다.

 

간첩을 생각해 보면 이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간첩은 나라의 체제에 반대하는 존재다. 헌법이 추구하는 의의 자리를 떠난 존재다. 그런 그가 지역 사회에 봉사와 기부를 많이 하여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고, 가난한 사람을 유익하게 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가 간첩인 것이 드러나면 그의 모든 행위는 모두 죄가 될 뿐 아니라 그에게 혜택을 받은 사람들도 원치 않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죄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중심, 곧 그 존재의 상태다. ‘존재 목적 안에 있느냐? 아니냐?’가 죄를 결정하지 행동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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