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에 주리다고 하셨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하나님의 의에 대한 갈증을 뜻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네 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은 첫 번째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과 결이 같습니다. 가난함이 천국을 얻듯이,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의로 채워야 할 빈 그릇인 사람이 마땅히 채워야 할 하나님의 의로 채워지는 것이 온전한 배부름입니다. 그리고 이 배부름은 이어 나오는 다섯 번째 복인긍휼히 여기는 것과도 필연적으로 연결됩니다. 내가 굶주려 결핍된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 의는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의 의도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앞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을 가진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표현할 내용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십자가를 지는 본성에서 비롯된 삶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소망과 간절함입니다. 이 십자가의 삶에 허기와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당연히 천국을 얻고, 하나님의 삶을 맡은 자리로 옮겨지는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잘 정의하지 못하는 선악과를 먹은 상태가, 바로 자기 의로 사는 사람의 삶과 상태입니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선과 악을 함께 가졌다는 뜻으로, 곧 선과 악을 사람이 스스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서로 다른 선악 기준의 충돌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자기 뜻대로 사는 모습이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자기 뜻대로 살다가 고난을 겪으며 자기 뜻이 꺾이고 낮아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가 옳다는 의로움으로 살아갑니다. 당연히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며 갈등을 겪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없으므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의로 배부르게 되는 구원의 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구하면 얻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의에 주린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 땅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의 결핍을 배고픔으로 여기는 사람은 오직 그것 만을 구할 것입니다. 반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일이 쉬워 보여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배고프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아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게 되면, 너무나도 당연히 그 목적을 향한 갈증이 생겨납니다. 사실 이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일로, 존재 목적이 가난하다는 것은 곧 그 의와 뜻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친히 보여주신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의, 곧 그 나라의 의입니다. , 이 의의 실체는 다름 아닌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린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 대한 소망을 간구하게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 간구를 당연히 다 들으실 것이며, 우리는 마침내 얻을 것입니다. 본래 그러라고 창조된 존재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께 창조 목적을 구하는데 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반드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배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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