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근심 걱정 없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 즉 죄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장성함이 어떠하든 죄는 언제나 핵심적인 신앙 이슈다. 분명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즉 구원을 얻는다는 건 죄가 없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도 기도할 때면 죄를 회개한다. 심지어 교회에서는 일상에서 짓는 죄에 대해 상기시키고 늘 회개하여 자신을 정하게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신앙인에게 회개는 일상이 되었는데, 그렇다는 건 논리적으로 죄를 사함 받는 구원을 얻었는데 여전히 회개해야 하는 모순 상태다. 이건 사실 간과할 사안이 아닌데, 교회와 신앙세계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고 있다.

 

이 모순적 상황은 어쩌면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른 구원을 믿고 있는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자기가 얻었다고 믿는 구원의 본질과 실체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순적 상황은 의외로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대중은 구원은 구원대로 얻었고, 일상에서 범하는 잘못된 행동과 죄는 늘 회개하면서 가고 있다. 이 모순적 괴리를 연결하는 가장 명분 있는 고리는 구원받은 사람 답게 살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건 결론적으로는 바른 접근이지만 자기 구원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원리를 알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죄를 이야기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한다. 신앙인들이 생각하는 죄는 대체로 잘못된 행동이다. 여기서 특히 <행동>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일단 신앙인이니까 성경대로 살지 못한 행동이 가장 먼저고, 사회적인 도덕과 법률을 어기는 것도 포함되며, 일상에서 피하기 힘드는 화를 내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하는 것과 같은 것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을 죄로 여긴다. 당연히 회개하는 것 역시 이런 행동에 대한 회개와 반성이다.

 

이 일반적 인식을 두고 죄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한다고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걸 과연 죄로 보시는 지에 대한 고찰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알고 믿는 하나님은 사람을 행동이나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행함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걸 아주 강조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과 정체성으로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을 정죄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행동, 딱 잘라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행동이나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행동을 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동은 앞서 우리 신앙인들이 죄로 여기는 잘못된 행동들과 궤를 같이 하는 행동들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한 사람들은 대개 우상을 섬기거나, 간음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말과 실제 행동을 달리 하시는 분인가? 말로는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고 하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면서 정작 심판은 사람의 행동을 보고 심판하시는 이중적인 하나님인가? 그렇지만 이렇게 접근하면 또 하나님의 신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아서 또 멈칫거리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는 행동이라는 걸 잘 생각해야 한다. 행동은 독립적이거나 그저 나오는 게 아니다. 행동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 생각과 의와 선에 대한 기준이 있다.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새치기한 운전자를 보면 화가 난다.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인데 사실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건 운전할 때는 교통법규를 지켜야 하고, 도로에서는 공정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의와 선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기준이 없다면 화를 내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스포츠인 야구는 10개의 팀이 있고, 야구를 좋아하고 입문하는 사람은 그 중 1팀을 응원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지면, 그것도 어이없이 지거나 상상 못 할 기이한 방법으로 지거나 우승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를 지면 팬은 화를 내고 낙담하고 인터넷 댓글에 비방을 쏟아낸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은 이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응원하는 팀이 없는 사람은 야구 결과로 인해 화를 내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기준이나 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건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중심, 즉 그가 가진 의와 선의 기준에서 비롯된다. 쉬운 예로 싸우는 두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에 충돌한다. 둘 중 한 사람이 내가 잘못했네라고 생각하는데 싸우는 경우는 없다. 즉 행동은 사람 안에 있는 생각과 의와 선의 가치가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행동을 심판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로는 그런 행동을 하는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행동은 자기 의로움과 자기 생각 혹은 생명 본성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생각하듯이 죄는 잘못된 행동이 본질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이끄는 그 사람의 가치관, 즉 그 사람이 가진 선과 악의 기준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이다. 우상이 자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기에 우상을 숭배하기에 죄가 되는 것이지 단지 절하는 행동 자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시는 게 아니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도 모두 그렇다. ‘내가 하면 옳다혹은 나는 이래도 돼라는 생각이 화룡점정이 되어 우리가 혐오하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된 <행동>이 죄가 아니라 그런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아내는 중심이 죄라는 걸 바로 인식해야 한다. 만약 행동 자체만으로 정죄하려 하면 성전에서 상을 엎은 예수님의 행동도 정죄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죄는 행동이 아니라 중심이란 걸 우리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 바로 알기 위해서 죄는 행동이 아니라 행동을 자아내는 심령의 중심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죄는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는 더 중요한 근거가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죄로 여기시는 지다.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말은 동시에 행함이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로움을 판단하실 때 사람의 행함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죄는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심령의 가치관과 의와 선악에 대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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