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정체성을 벗어난 죄를 회개하여 얻는 구원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 지 분명해졌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건 행위의 죄가 아니라 존재의 죄다.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를 벗어나서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여 추구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상충된 사람과 세상을 심판하며 사는 삶을 회개해야 한다. 이건 행위가 아니라 내 존재가 하나님이 정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간 나의 모든 행동들이 간첩처럼 하나님의 의를 떠난 자리에서 행한 것임을 알고, 모든 근원인 스스로 선악을 정하며 살아온 선악과를 먹은 삶을 회개해야 한다.

 

구원을 얻는 회개는 존재 정체성을 떠난 죄를 회개하는 것

 

이 회개는 거듭남과 연결된다. 존재의 죄를 회개한다는 건 존재가 바뀐다는 뜻이다. 만약 회개는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계속 자기 존재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의미다. 그러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우리 존재 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계속, 반복해서 십자가를 져야 한다. 거듭남이 존재를 바꾸는 것임을 모르고 우리가 계속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겠다고 하는 건 계속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았는데 왜 회개하는 지에 대해 의문에 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건 죄와 회개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와 뜻과 선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하신 뜻에 순종하기를 바라시며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데, 그 자리를 스스로 떠나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살아가는 자리로 벗어나 버린 게 죄라는 걸 안다면, 그 길에서 돌아서서 원래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회개라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가 알듯이 회개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가는 것이다.

 

이렇듯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말씀을 듣고, 또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하나님 아들이라는 자리를 알고, 스스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걸 깨닫고 그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창조 목적의 자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게 회개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자기가 가던 길을 돌아 간다는 건 지금까지의 인생과 가치관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의미이기 때문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돌아갈 리는 없다. 자기 죄를 시인하면 사하신다고 말씀하신 이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여기서 우리는 이 법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알 필요가 있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다. 구원을 대변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걸 또 남자 아이의 아들이라는 개념으로, 또 남자 부모인 아버지로 한정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어머니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나 하나님을 남자로 인식하는 사람이나 사실 다른 건 없다. 이건 성별로 아버지, 아들을 말씀하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 속 아들이라는 존재는 성별이 남자인 자녀는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아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잇는 자녀로 아버지의 의를 실현하는 육신을 가진 존재다. 이 역할을 인간 사회에서 성별이 남자인 자녀가 해 왔기에 아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아들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진 사람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하나님의 성품과 의와 뜻을 표현하는 육신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육신, 그게 바로 아들이다.

 

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우리가 앞서 이야기해 온 죄와 회개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과 구원의 섭리인 거듭남 모두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의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육신을 가진 존재, 즉 아들이어야 했다. 여기가 사람의 자리고, 아담이 있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사람은 순종을 위해 주신 선택의 권한을 가지고 선악과를 먹었다.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며 자기를 드러내고, 인생의 주권을 차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본성이기에 모두가 죄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기 맘대로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로 간 사람을 방치하지 않으셨다. 아들을 보내사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아들의 모습을 보이셨다.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마음인 낮아지고, 겸손하며,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의 총화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 저 모습이 바로 내 존재의 목적,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이구나!”라고 고백할 때 구원을 얻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다. 하나님의 이 의도대로 십자가를 보며 원래의 자리를 깨닫는다는 건 이제껏 그렇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죄사함과 구원이다.

 

그렇게 우리는 원래 우리의 자리인 하나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에겐 죄가 없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된 사람이기에 자리를 회복했다는 뜻이다. 자리를 벗어난 게 죄고, 다시 하나님 아들이 된다는 건 죄사함이다. 창조 목적의 자리를 회복하여 아들이 된다는 건 죄가 사해졌다는 뜻이다. 이것이 죄사함인데 다시 존재를 회복하는 죄사함 필요한가? 하나님 아들이어야 했던 사람이 그 자리를 벗어난 자리에서 다시 아들로 돌아 온 이상 또 다른 거듭남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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