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5-8)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구제, 기도, 금식하는 자를 ‘외식하는 자’로 정의하셨습니다. 물론 외식이 이 세가지 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다른 형태의 모든 삶은 외식이므로 외식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게 하시는 은혜라는 점에서 보면, 그 십자가로 얻는 구원은 외식하는 자에서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구제를 말씀하셨는데, 이 구제는 결국 하나님의 성품이 행동으로 나타나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알도록 하는 섬김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사람이 알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제입니다. 그렇게 내 육신을 내어주어 수고하며, 겸손히 섬기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섬기는(구제를 베푼)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었듯 구제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자기 안에 없던 것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제를 행하려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심령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 목적인 하나님의 뜻은 나의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창조하신 하나님만 나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계시므로 그분께 구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은혜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사람, 나)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주기도>가 바로 이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외식을 말씀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신 뜻입니다. 사람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므로 창조주 하나님, 사람의 운명을 정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뜻을 구하여 속사람과 삶의 행동을 일치시는 것입니다. 주기도가 이루어지면 지면 외식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본성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으로 거듭난 생명이 되면, 하나님 말씀이 본성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외의 간구는 모두 외식이 됩니다. 사람이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인 그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자기 본성이 되지 않습니다.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존재 목적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외식하는 삶입니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의 행동이 아니라 삶 전부가 외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 밖에 있으면 그게 바로 이방인입니다. 육신의 유전자가 이방인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은 중언부언 기도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의가 아닌 기도와 삶의 모든 소리가 중언부언입니다.
중언부언은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삶의 모든 의미 없는 말
중언부언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같은 말의 반복만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말과 자기 존재 정체성과 다른 말은 모두 중언부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존재 목적을 구하지 않아 생명이 되지 않았다면 골방에서 혼자 기도해도 외식적인 기도입니다. 골방이라는 장소를 고집하는 그 자체가 외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를 창조하신 뜻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면 모든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밖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므로 ‘이방인처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이 모두 외식적인 기도
우리는 이 관점에서 주기도를 조명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는 이 범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사람이 일반으로 구하는 기도의 대부분은 주기도의 범위 밖에 있습니다. 사람의 기도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아시고 주셨다고 하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일상으로 간구하는 대부분의 기도 제목, 자녀나 건강이나 제물과 같은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 항목들이며, 간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순종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주기도문에 대해서 고찰하고 묵상해야 하는데, 주기도문에 대해서는 이미 2차례 블로그에 포스팅이 되어 있어 이 산상수훈에서는 간략하게 외식과 관련하여, 그러니까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핵심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기도의 주제는 ‘하늘의 뜻이 땅인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과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 죄를 사하는 것과 시험에 들지 않기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간구는 모두 하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과 연쇄적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표현해야 할 존재가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로움(사람에게 보이려고)을 표현하는 죄(자기 정체성을 벗어남)의 상태인 외식에서 벗어나려면 하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간구해야 할 단 하나의 기도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인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가 외식하지 않는 기도
우리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으십니다. 피조물이 창조주가 뜻한대로 살기를 바라며 간구하는데 들어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정성,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정성이나 금식하는 정성 때문에 뜻하지 않은 것까지 들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휴대폰을 구매한 사람은 휴대폰이 자기 의도대로 동작할 때 관리하지 목적과 다른 증상을 보이면 충전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지, 또한 뜻하신 대로 간구한다면 오히려 외면하실 수 없는 구조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외식하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기도하지 않고 골방에서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한다면 그게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으로 가르쳐 주신 우리의 존재 목적,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을 구하여 삶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구하는 기도가 외식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주제별 성경 보기 > (2026) 산상수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상수훈) 외식은 창조 목적과 다른 삶 (0) | 2026.07.24 |
|---|---|
| (산상수훈)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0) | 2026.07.21 |
| (산상수훈) 십자가의 도 vs. 탈리오 법칙 (Lex Talionis) (0) | 2026.07.16 |
| (산상수훈) 주권도 없는 주제에 맹세하지 말라 (0) | 2026.07.14 |
| (산상수훈) 내 존재 목적 아닌 것을 탐하는 간음 (0) | 2026.07.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