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1, 12)

다윗의 생애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죄 혹은 실수라면 당연히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일일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따진다면 이후에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인구조사로 인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염병으로 죽게 되는 일이 더 중한 범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밧세바의 일이 부각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일을 단순하게 할 일 없이 궁중을 돌아다니다가 목욕하는 여자를 보고 간음하게 된 사건으로 보긴 어렵다.

 

우리는 지금 다윗을 통해 거듭난 사람의 삶을 조명해 가고 있지만, 오늘 이 밧세바의 일은 어떤 상황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상황인지를 조명해 보자. 그러니까 단순하게 우리가 어떤 신앙의 상태가 되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상황이 되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이건 아들이 아버지께 어떤 일로 책망을 받는지를 고찰하는 것과 같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던 시기에 국가적인 큰 전쟁이 있었다. 우리가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이 전쟁은 아주 긴 전쟁이었다. ( 3) 사울에게 쫓기던 세월(7년 반)을 제외하면 다윗의 생애에 있어 가장 길고 큰 전쟁 중이었다. 밧세바와의 간음은 이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다 보니 이 배경이 크게 주목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윗이 밧세바를 취할 때 상황을 보면 어쩌면 간음이 아니어도 다윗이 다른 실수를 범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영적 전쟁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바로 나의 자리다.

 

이 전쟁은 암몬의 왕권 교체 시기에 발발한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섬기던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이 나하스의 조문객을 보냈다. 그런데 암몬의 대신들이 새로운 왕 하눈에게 다윗이 보낸 조문객은 조문 온 것이 아니라 염탐하러 온 것이라고 말하고, 하눈은 조문객의 수염을 깎는 수모를 주어 돌려보낸 일로 시작된 전쟁이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 몬 죽은 전장도 바로 이 전쟁터다.

 

먼저 암몬 족속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보면, 암몬은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굴에 피해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두 딸이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이 없다며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여 동침하여 낳은 아들 중 하나다. 첫째 딸이 낳은 아들은 모압으로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고, 둘째 딸이 낳은 아들은 벤암미로 바로 암몬 족속의 조상이다. 그러니까 모압과 암몬은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결하려는 생각의 족속이고, 그런 신앙의 대표하는 이방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생각을 이방인의 생각으로 여기신다.

 

다윗이 강성했기 때문에 암몬은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며 순종했었다. 다윗이 강성했다는 건 하나님의 의가 세상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걸 우리 개인의 신앙에 투영하면 하나님의 의가 내 삶을 온전히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안에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해결하겠다라는 생각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 암몬이 반란을 일으켜 전쟁을 일으켰다는 건 내 안에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이 해결하겠다는 암몬 족속의 본성은 항상 우리를 위협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존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일을 걱정한다. 이는 신앙이 자랄수록 더 커지는 이방인의 생각이다. 어릴 때는 아이와 같아서 다른 일에 상관하지 않지만, 자라면서 다른 사람, 나라나 사회의 일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신앙이 자라면서 암몬 족속과 같은 유혹을 늘 받게 되는데 이게 상당히 명분이 있고 주님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 생각에 빠지면 하나님이 책망하실 일을 저지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3(4차로 나눌 수도 있음)전까지 진행되었다. 그런데 다윗은 2차 전쟁 때 참전해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제 암몬의 수도를 함락시킬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에 다윗은 나가지 않고 왕궁을 거닐다 밧세바와 간음하게 된다.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보면 단지 육체의 정욕에 끌려 범한 간음으로 만 보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건 내 안에 있는 이방인의 생각을 물리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생긴 사건인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다윗은 나태하거나 방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전쟁의 승기를 잡은 즈음에 전쟁터에 있지 않았다. 우리 개인의 신앙에 투사하면 하나님의 일을 내가 직접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날 때 최선을 다해 대적하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윗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간음은 자기 짝이 아닌 상대와 관계하는 것이다. 자기 자리를 벗어난 상태에서 간음은 결이 같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 이와 관련된 말씀을 찾는다면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이다. 당연히 교만을 상기할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안에서 아주 작게 일어나는 이방인의 생각,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 내 안에서 이방인의 생각과 믿음이 일어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것을 경계하고 최선을 다해 이겨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밧세바가 낳은 첫번째 아들은 죽는다. 놀랍게도 그 아들이 죽고 나서야 암몬과의 전쟁이 끝난다. 그렇게 승리한 이후에 다시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솔로몬이다. 전쟁을 끝내는 전투에 다윗은 참전한다. 이런 전개가 신앙의 어떤 유혹이나 시험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는 건 밧세바가 다윗의 아내와 형식이 아니듯이 우리의 자리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유혹이 찾아오면 정말로 최선을 다해 그것일 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내 자리가 아니므로 내 자리를 벗어나 내 짝이 아닌 것과 함께하게 된다. 그러면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것과 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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