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을 시작하며…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2026) 산상수훈 Date : 2026. 6. 18. 08:36 Writer : 김홍덕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긴 설교를 우리는 흔히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흐름으로 보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 전파, 곧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의 서론에서 그 책의 성격을 미리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이 산상수훈을 통해 앞으로 이 땅에서 전하실 복음이 무엇인지를 개론처럼, 아니 그 본질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이 산상수훈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산상수훈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이 육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즉 가르침이 삶이 되고, 행동의 DNA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점에서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제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말씀하시는 책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예수님의 제자인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의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상수훈에 있는 대로 행동해서 크리스천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본성인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의 삶이 이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방향이 바뀌면 안 됩니다. 그건 율법적인 신앙입니다. 이건 단순히 제자도나 산상수훈에만 국한된 시각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는 기본 관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잠깐 산상수훈 앞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어부인 그들이 충실히 자기 본업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나를 따라오라고 하시자 제자들이 따랐다고 했습니다. 문자로만 보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혹은 몽유병 환자처럼 따라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자기 안에 예수님 말씀에 대한 묵상과 동요가 있었던 상태였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서에서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자기 마음에 공명이 일어났고, 마음에 있던 갈등이 정리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나섰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가 제자가 되는 과정도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모두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을 들었을 때 의심도 하고 부인도 하다가,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가 예수님을 만난 순간과 같은 계기를 맞이하면 그때 비로소 제자가 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자는 그냥 교회에 다니거나 단순히 열심히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산상수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1)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보고 복음을 전하시려고 했는데, 이때 예수님이 본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나아온 게 아니라제자들이나아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이 땅에 오셨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 예수님께로 오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걸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산상수훈은 바로 이런 사람, 즉 예수님께 나아오는 제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 또 산상수훈에 나오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한도덕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는 이 산상수훈을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의 관점에서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곧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주제이므로 단지 지금 필자의 산상수훈 강해의 차별성을 두기 위한 게 아닙니다. 성경 속 말씀은 당연히 성경의 주제 위에서 조명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 주제를 떠나 산상수훈을 신앙인의 도덕 강령으로 이해한다면 그게 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성경의 절대적 의도로 봐도 당연히 그렇게 보면 안 될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뿐 아니라 모든 성경이 그렇습니다. 산상수훈을 시작하는 팔복에 나오는 부터 어쩌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실 지도 모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한 목적이 충족된 상태입니다.

 

그럼 이제 그 팔복에서부터 어쩌면 많은 이들이 신앙인의 도덕강령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산상수훈을 성경의 주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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