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21장 이후부터는 시간적 흐름을 따르기보다 다윗의 일생을 영적으로 정리하는부록적 성격을 띤다. 실제로 그 구조와 내용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러한 성격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21장부터 마지막 24장까지는 두 가지 재앙 혹은 심판 성격의 사건이 양 끝을 감싸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다윗과 함께한 용사들의 명단과 다윗의 찬양, 그리고 유언이 배치되어 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본편이 끝난 뒤 자막과 함께 흐르는쿠키 영상혹은에필로그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그중 21장에는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저지른 죄를 청산하는 사건이 등장한다. 사울은 과거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과 맺었던 언약(여호수아 9장에서 기브온 족속이 여호수아를 속이고 맺은 언약)을 어기고 그들을 학살했다. 놀라운 점은 사무엘 하 21장 외에 성경 그 어디에도 이 사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갑작스럽고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언약을 어기고 기브온 족속을 학살한 죄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지적하시며 이스라엘에 3년 동안 기근을 내리셨다. 다윗 왕의 입장에서는 선대의 잘못으로 인해 닥친 이 상황이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기브온 족속이 요구한 보상은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의 목숨이었다. 결국 다윗이 그들의 요구대로 후손 일곱을 내어주자 비로소 기근이 멎었는데, 이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우선 이 사건을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은 비록 상대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의 목숨을 대속물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방법이자, 당시 시대적인 규범 혹은 불문율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본질은 기브온 족속으로 대표되는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게 미치는 영적인 영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마주하는 모든 이방 족속을 멸하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면이방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가치관을 온전히 버려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여호수아 시대에 속아서 맺은 언약으로 인해 기브온이라는 이방 세력이 살아남았고, 그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다. 사실 성경 전체를 보면 완전히 멸절당한 족속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실체가 바로 우리 내면의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이방인과 같은 마음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방인과의 언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기브온 족속의 요구대로 사울의 후손 일곱을 목 매달고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장사 지낸 후에야 기근을 멈추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사울 후손 일곱의 목숨이등가 교환된 셈이다. 이방인과의 언약을 어긴 대가로 사울의()’가 육신이 되어 나타난 후손들의 목숨을 지불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그 두 가치가 동일하게 취급된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 가치를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세상적인 관점에서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 했고, 그러한 철학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상세한 전후 상황은 생략되어 있으나, 기브온 족속 학살 역시 사울의 이러한 통치 철학이 낳은 결과물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그의 행적은 이방 족속 기브온에게 자기 의가 육신이 된 후손들의 목숨으로 값을 지불하는 비극으로 귀결된다. 세상의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던 이방인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하나님과 맺은 언약조차 무시한 채 이방인을 처단했던 사울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멸시했던 그 이방인에게 자기 후손이 희생당하는, 이른바역관광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의의 법을 찾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로마서 9:31-32, 개역한글판)

 

이 사건은 두 아들을 잃은 사울의 첩 리스바가 밤낮으로 아들들의 시신을 지켰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수습하여 정중히 장사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제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근을 끝내신다. 이어지는 말씀이 다윗의 용사들을 열거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에피소드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님의 의()로 나의 삶을 다스리고 다윗과 같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이방인적 가치관은 어떻게든지 저 처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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