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가장 먼저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말씀을 듣고내가 어떻게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면 천국을 내 것으로 얻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천국이 내 것이 된다는 건 천국 시민이 되어 그 통치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정작심령이 가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극심한 곤경에 처하거나 삶이 무너져 마음에 여유가 없는 여유의 가난함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말 그대로 형편이 궁핍한 것일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무엇에 대해 궁핍한가가 핵심이며, 그것은 바로천국(하늘의 뜻)에 대한 궁핍함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난함이 단순히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종교적 소망을 뜻할까요? 그것도 100% 맞는 답은 아닙니다. 천국을 갈망하는 건 가난의결과일 뿐, 궁핍의대상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다름 아닌하늘의 뜻에 주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우리가 나중에 함께 살펴볼 주기도문의 첫머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을 상기하면 명확해집니다. 그러니까 심령의 궁핍이란 하늘의 뜻이 내 안에 없음을 애통해 하는 가난입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 하늘의 뜻이 비어 있음을 절감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 만을 갈망하는 사람, 그리하여 천국의 법을 구하는 자에게 천국 시민의 권세가 임한다는 선포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논리로 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해석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마땅히 하늘의 뜻과 법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면 미국의 정신과 의도가 녹아 있는 그 나라의 법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그걸 모른 채 미국 땅에 덩그러니 떨어졌을 때 느끼는 막막함과 답답함, 그것이 바로 심령의 가난함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시민이 되려면 그 나라의 의와 법도를 알아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가난함을 도리어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진짜 의도를 뚫어보아야 합니다. 하늘의 뜻이 자기 심령에 없어서 그것을 간절히 목말라 하는 사람, 그리하여 창조주 앞에 서서 '인간의 존재 목적'을 구하는 사람이 바로 여기서 말씀하시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복은 다름 아니라, 내가 왜 창조되었는지 몰라 방황하던 절대적 결핍의 상태에서 벗어나, 마침내 내 존재의목적이 충족된 상태(본질의 완성)’로 나아가는 복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여기에 존재 목적의 달성을 뜻하는마카리오스라는 신성한 단어를 배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난과 궁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물질적인 결핍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 물질이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사소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언제든 풍족히 공급하시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내 지갑이 가난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하나님의 영적인 복으로 연결된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주유가 필요하다는 걸 당연히 알듯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조물의 육체적 필요를 완벽히 아시며 그것을 공급할 계획을 이미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팔복의 가난은 결코 육신의 가난이나, 세상을 살면서 남들보다 더 가졌으면 하는 소유의 결핍이 아님을 명백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을 탐구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그 목적을 스스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절대 결핍과 한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진정으로 주리게 만드는 가난(궁핍)의 본질은 다름 아닌존재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 존재의 목적은 오직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만 아시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에 대하여 가난함을 인식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확히 인식하지만 정작 그 목적을 몰라 방황하는 실존이, 하나님만이 쥐고 계신자기 존재의 목적이 나에게 결핍되어 있다는 비밀 같은 사실을 자각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자, 피조물에게 모든 것이 충족된 복의 시작입니다. 이 존재론적 궁핍을 정직하게 인지하고,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창조주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 자체가 이미 복의 궤도에 들어섰다는 증거입니다.

 

이 존재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오직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 목적을 모르면 결코 하늘에 속할 수 없으며, 천국이 자기 것이 될 수도 없습니다. 존재가 존재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같아서, 그 인생의 피곤함과 방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어둠과 혼돈의 삶을 감히 천국에 속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천국이 나의 소유가 되려면 천국의 의와 뜻, 그리고 그 나라의 법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천국 시민이 될 사람들에게는 나를 창조하신존재 목적그 자체입니다. 이 존재 목적을 발견하고 온전히 누린다는 것은, 내가 존재함을 인식하는 피조물에게 모든 본질이 100% 충족된 상태, 즉 산상수훈이 선포하는 진짜마카리오스()’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다른 복들도 살펴볼 것입니다. 독자들께서는 이걸 특이하고 신기한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속 존재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팔복을, 산상수훈을, 성경을 바로 보면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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